어릴 적 동네에 `영진아` 하고 부르던 한살 위 형이 있었다. 왜소한 몸, 흐리멍덩한 눈, 덜떨어진 `반푼이` 영진이는 생김새는 외계에서 온 ET 같았고, 굼뜨고 어수룩한 몸짓이 마치 거북이처럼 보였다. 영진이는 잦은 괴롭힘을 당했고, 놀림감이 되곤 했다.
영진이는 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거북이 등껍질만 한 가방을 등에 멘 채 낡고 바람 빠진 자전거를 타고, 멸시와 조롱이 가득한 골목을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말도 표정도 없이 항상 풀 죽어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영진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만큼은 얼굴이 환했다. 웃는 걸 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몸에 맞지 않는 큰 교복을 입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던 영진이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20년 넘는 세월이 지났고, 영진이를 놀리던 꼬마들은 이제 동네에 살지 않는다. 매일 함께 뛰어놀던 그 아이들 얼굴조차 희미한 내 기억은, 존재감 없던 영진이를 간직할리 없었다. 기억에서 완전히 유실되어,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다.
얼마 전 방배동 한 빌딩 앞에 놓인, 내가 좋아하는 조각 작품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 길은 내 오래된 거리산책 코스다. 빌딩 앞을 지나는데, 저쪽에서 자전거를 탄 꼬마가 안장 위에서 신문을 펼쳐 읽느라 두 손은 핸들에서 떼고 고개는 신문에 파묻은 채 보도블록을 달려오는 것이었다. 곡예나 다름없는 운전이었다.
“이 녀석아,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꾸짖으러 다가서려는 순간, 신문에 가려진 얼굴이 나타났다.
영진이다. 틀림없는 영진이다. 몸은 왜소했으며 생김새는 ET 같고 몸짓은 거북이처럼 느렸다. 영진이는 여전히 등에 등껍질 같은 배낭을 멘 채 낡은 자전거를 달리고 있었다.
세상 노을을 다 뒤집어썼는지 벌써 다 늙어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 자리에 발이 붙어버린 내게론 한번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 옛날 멸시와 조롱의 골목을 빠져나가듯, 도시의 소음을 스스로 음소거한 채 자동차와 상점과 사람들의 무표정을 지나쳐갔다.
나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잃어버렸던 기억의 파편이 20년 너머에서부터 날아와 가슴에 직격으로 박혀들어, 숨도 못 쉬고 먹먹했다. 눈물샘에서 누군가 페달을 돌려 자꾸 뜨거운 것을 밀어내는지 두 뺨을 타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살아있었구나, 저 자전거를 집 삼아 이불 삼아 20년을 달려왔구나, 저 자전거 위에서 만나고 헤어졌구나, 울고 웃었구나, 앙상한 다리로 페달을 돌리며 세상의 험한 비탈을 달려왔구나.
눈물을 닦느라 정신없는 나를 골목의 전봇대처럼 세워둔 채 영진이는 지나가버렸다. 나를 알아봤을까? 몹시 미안하고 또 무안했다. `영진아, 이리와 봐.` 그 싸가지 없던 어린 날의 내 목소리가 귓가에 두근거렸다.
`형!` 나는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린 그 한마디를 끝내 외치지 못했다. 다시 20년 너머로 가려는 듯, 녹슨 노을 속으로 스미어 사라지는 영진이의 자전거를 바라보며, 형, 영진이형… 한참을 중얼거리고 서 있었다.
거리를 활보하는 자전거들을 보니 너무 낡은 영진이의 자전거가 차라리 꿈처럼 느껴졌다. 20년 전, 또래들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영진이 형!` 따뜻하게 불러줬다면 자전거 안장은 녹슬지 않았을 테고, 신문지로 가려야 할 아픈 세상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을 지도 모른다.
손에 닿을 듯 하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시절이 있다. 괴로운 낮잠 중에 영진이의 자전거가 유년의 골목을 달리는 꿈을 꾼다. 그런데 거기 나는 보이지 않고 영진이만 보인다.
빛이 너무 환해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잠꼬대처럼 내가 소리친다. “형, 영진이 형! 이리 와서 술 한잔해요.” 그는 들었는지 아니면 내키지 않는지, 고개를 돌려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