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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되지만, 여성은 안 된다고?

등록일 2016-06-22 02:01 게재일 2016-06-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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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신안 섬마을에서 초등학교 여교사가 학부모 등 남성 3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술을 강권해 취하게 한 후 관사로 데려다준다고 하면서 범죄를 저질렀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후 지역 주민들 반응이 가관이었다. “젊은 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지”, “여자가 꼬리치면 안 넘어올 남자가 어디 있나”, “어떻게 처녀가 술을 그렇게 마셔” 따위 정신 나간 이야기를 듣자니 인간에 대한 환멸이 몰려 왔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자는 지옥”이다. 고려대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심각한 언어성폭력을 가한 것이 밝혀졌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찌질`하다. 오간 대화를 보면 `성교`라는 단어만 들어도 지들끼리 몸을 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중학생들 같다. 머릿속이 `야동` 판타지로 가득 찬 철부지들이다. 그들을 옹호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자기들끼리 한 말인데 어때”, “실제 행동한 게 아니잖아”, “원래 남자들은 다 그래” 같은 말은 모두 공범의식의 발로다.

네 명의 여성이 연예인 박유천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대부분 유흥업소 종업원들인데,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꽃뱀들이 제대로 물었네”, “몸 파는 여자들이 감히 성폭행 운운해?” 등 비아냥거림 속에는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그저 육체로 여기는 동물적 사고와 `씨받이`, `수청`으로 대표되는 전근대의 가부장적 성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혐의대로라면, 박유천은 치밀한 성범죄자다. 직업 특성상 어디다 쉽게 하소연 못하는 여자들만 대상으로 CCTV 없는 화장실에서 일을 저질렀다.

남자는 그래도 되는데 여자는 그러면 안되는 게 너무나 많다. 남자는 외도를 해도, 성매매를 해도, 음담패설과 성희롱을 해도 `남자니까` 괜찮은데, 여자는 술을 마셔도, 짧은 옷을 입어도, 늦게 돌아다녀도, 성적인 농담을 해도 `여자니까` 안 된다. 남자들은 터무니없이 당당하고, 여자들은 묵인한다. 성매매를 하고 바람을 피우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의 문제이니 그저 들키지만 말라는 여자들의 태도도 문제다. 나는 영웅호색이라는 말도 싫고, 야당 지도자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받은 권력자가 “남자 아랫도리 문제는 신경 쓰지 말라”며 일축했다는 일화 속 `남성 아랫도리 프리패스 주의`도 불편하다.

박유천을 고소한 여성들더러 꽃뱀, 매춘부 운운한 자들은 신안 성폭행범을 두둔한 지역 주민과 다를 바 없다. 여성들이 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가?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다. 그들 말마따나 `쉽게 돈 버는` 성매매 인프라는 남자들이 만든 것이다. `남자는 원래 다 그래`와 `남자는 그래도 되지만 여자는 안 돼`는 모두 남자들의 공범의식과 침묵, 용기 없는 소심함이 키워낸 암세포들이다. 어떤 남자들은 나더러 고상한 척한다고, 가식적이라고 할 것이다. 맞다. 선배 시인들이 어린 여자 시인들을 앞에 두고, 또는 없는 자리에서 음담패설과 성희롱하는 걸 방관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선배라서, 자리를 어색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하는 내 비겁함이 싫어 문인들 술자리에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나쁜 입은 다물게 하고, 나쁜 손은 꺾어버릴 생각이다. 원래 남자들은 다 그렇다면, 나도 똑같음을 인정하고 내 안의 괴물이, 야수가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이성과 합리, 신사적 태도로 스스로를 제어해야 한다. 자기 통제에 실패해 선을 넘는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그가 폭주하지 못하게 붙잡아줘야 한다. 그 옛날 남편들은 술, 도박, 외도 3관왕에다 아내 폭행까지 더한 그랜드슬램 달성자들이다. 그게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진 세월을 산 한 할머니의 TV 인터뷰가 기억난다.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어 세상을 맘껏 날아다니고 싶다”고. 남자들이여, 우리 아내와 딸, 누이와 애인들에게만큼은 그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스런 속박을 물려주지 말자. `여자는 안 돼`에 가두지 말고, `남자는 돼`로 도망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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