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의 운동화김숨 지음민음사 펴냄·장편소설
김숨은 최근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며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05년 첫 소설집 `투견`을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 김숨은 매해 쉼 없이 소설집 4권, 장편소설 7권을 펴냈다.
전작`바느질하는 여자`가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써 내려간 소설이라면, `L의 운동화`는 산산이 부서져 내린 운동화를 한 조각, 한 조각 맞추어 나가며 복원해 내는 작품이다.
이한열은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22살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희생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150만 추모 인파가 모여들었다.
피격 당시 이한열이 신었던 270㎜ 흰색`타이거`운동화는 현재 오른쪽 한 짝만 남아 있는 상태다. 시간이 흐르면서 밑창이 100여 조각으로 부서질 만큼 크게 손상됐지만, 2015년 그의 28주기를 맞아 미술품 복원 전문가인 김겸 박사가 3개월 동안 복원하여 현재 이한열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김숨 작가는 김겸 박사의 미술품 복원에 관한 강의를 듣고, 과천에 있는 김 박사의 연구소를 방문해 복원 작업을 지켜본 후, 운동화가 복원되는 과정을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L의 운동화`는 한 개인의 사적인 물건이 시대적, 역사적 유물로 의미를 부여받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미술품 복원 전반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이한열의 생존 당시 이야기와 그의 친구들 및 유가족들의 뒷이야기도 그려졌다.
이 소설은 이한열의 운동화를 통해 한 시대의 슬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라 할 수 있는 운동화 한 짝이 `사적인 물건`에서 시공간을 뛰어넘어`시대를 대변하는 물건`으로 역사적인 상징이 되는 과정을 김숨 작가 특유의 집요하고 치밀한 묘사력으로 세세히 그려내며, 삶과 죽음, 기록과 기억, 훼손과 복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소설은 마크 퀸의 자화상 `셀프`로 문을 연다. 자기 두상을 모형으로 한 석고 거푸집에 자신의 피를 부어 응고시킨 작품이다. 청소부가 실수로 작품을 보관한 냉동고의 전원 코드를 뽑는 바람에 피가 녹아내려 훼손됐다. 마크 퀸이 죽은 뒤 저 작품이 망실(亡失)될 경우, 저것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피는 살아 있는 몸속에서 생성되고 순환하는 오묘한 재료였다. 온도에 따라 변질, 소실되기 쉬운 피를 다급히 수혈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피`라는 물질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냥 피가 아니라, 마크 퀸의 피를. 만약 30대 초반에 모은 피로 제작한 `셀프`일 경우 그 당시의 피를 대체할 물질을. 다른 사람의 피가 섞여도 그것을 여전히 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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