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안동의 한 도서관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한 남자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장면이 TV뉴스화면을 통해 전파됐다. 정신지체 장애 3급 판정을 받은 남자(27)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여중생을 감싼다는 이유로 여고생(17)을 주먹과 발길질로 무참하게 때렸다. 대낮에 공공기관에서 힘없는 여고생이 폭행을 당하고 있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치안이 잘 되어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많은 학부모의 공분을 샀다. 지난달에는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30대 남자가 생면부지의 여성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도 발생했다. 피해자와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이 그저 자기 기분에 따라 저질러지는 `묻지마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런 범죄는 피해대상이 특정되어 있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사회범죄이다.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2015년 사이에 묻지마 범죄가 총 163건이나 발생했고 그 원인으로는 정신질환(36%)이 가장 많았고 이어 알코올중독과 마약(33%), 사회불만(24%), 기타(7%) 순으로 조사됐다. 그냥 단순한 사회현상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학자들은 역사적으로 큰 전쟁을 겪고 나면 젊은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기존 도덕체계나 가치체계가 무너져 버린 탓에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성향이 나타난다고 분석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앙팡 테러블`이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앵그리 영맨`, 몽고침략 이후 백주강탈과 부녀자 겁탈을 일삼았던 `악소배(惡少輩)` 등을 그 예로 들고 있다.
그렇지만, 전쟁을 겪지 않았는데도 이러한 사회병리현상이 만연한다는 것은 전쟁에 버금가는 큰 가치체계의 파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방증으로 우리 사회가 매우 중대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지난 1일 국무총리 주재로 법질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남녀화장실 분리설치 의무대상 범위확대, 범죄 취약지역 폐쇄회로(CC)TV 설치 확대, 처벌 강화,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주취·정신장애 경미 범죄자의 재범 방지를 위해 지난해 12월 2일 공포된 `치료명령제도` 시행에 필요한 하위법령의 조속한 정비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정부의 이 대책 역시 미봉책에 그칠 확률이 높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되풀이됐던 대책이다. `묻지마 범죄`의 원인 진단부터 다시 하고 근본적인 처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대체로 공감하고 있는 원인으로는 도시가 너무 과밀해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적 거리는 가까워졌는데도 인간적 거리는 멀어져 개인 간 소통이 결여돼 있다. 또 사람이 천성적으로 지닌 동물적인 공격성을 자제할 만한 인성교육을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르치질 않았다. 교육이 없는 빈자리에 TV나 인터넷 게임이 들어앉아 매일같이 손쉽게 사람을 치고 패고 죽이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이 때문에 충동을 억제하기보다 자극을 하고, 말보다 행동을, 책임보다 권리를 주장하는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부모들의 과잉보호와 인성보다 성적을 중시하는 교육환경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 사회부적응아를 양산하고 있다.
진단이 나왔으면 처방을 내리면 된다. 대학 입시와 성공을 위한 천편일률적인 교육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문화적 소양을 길러주는 교육에서부터 사람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인성교육에 이르기까지 사회전반적인 교육시스템을 새롭게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