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백 겸
숲은 불타버린 나무들로
강은 몸이 삶아져 둥둥 뜬 물고기들로
하늘은 방사성 낙진에 가려진 검은 겨울로
대지는 아우슈비츠 화장터의 해골들로
가득 찼다
지구의 나이 동안 쌓아온 생명의
바벨탑이 무너져 내렸다
사랑은 길이 끊어진 전선들과 자동차들이
신음하는 아비규환으로
예술은 귀와 눈을 잃어버린 장애인의 긴
침묵으로
학문은 주소를 잃어버린 책들의 슬픔으로
종교는 무너진 사원의 돌 더미로
문명의 선한 얼굴이 모두 불타버린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핵미사일 단추가 눌러지던 그 날
빛과 열의 해일을 몰고
죽음이 정체를 드러내던 그 날
칼자국이 난 평화의 틈으로 캄캄한
바람이 불던 그 날
지난 가을 일본 히로시마현에 있는 평화공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피폭된 현장에 세워진 기념공원이었다. 가공할만한 원폭피해를 보면서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혔었다. 어디 그뿐인가. 몇 해 전 일본 후쿠시마원전 폭발에 따른 상상하기 힘든 폐허가 되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았지 않는가. 시인은 인류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제공하는 원전이지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폐해에 대한 우려와 공포감을 이 시 한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