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이라 함은 남을 대신해 작품을 만들어주는 행위나 또는 그런 작품을 말하는 것이고, 조수라 함은 어떤 책임자 밑에서 지도를 받으면서 그 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말한다.
예술장르에서 조수를 통해 작품을 완성시키는 경우는 많다. 특히 건축분야는 건축가는 설계만 할 뿐이지만 노동자가 시공한 완성된 건축물은 건축가 작품이다.
조각이나 회화분야에서의 벽화 같은 대작(大作)을 만들고자 할 때 혼자서는 어렵기 때문에 보조를 할 수 있는 제자나 조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가 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중요한 대작(大作)들은 대부분 조수나 하도급 업자들이 만들었다.
19세기 오귀스트 로댕과 그의 조수였던 부르델은 근대조각을 논의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작가와 조수 관계이다.
부르델이 로댕의 문하로 들어간 것이 서른두 살, 이후 마흔일곱에 그의 작업실을 나오기까지 15년을 로댕의 조수 겸 수제자로 작업을 하며 후대에 유명해지는 많은 조각가들의 스승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또한 영화로까지 제작된 로댕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은 여성 조각가이다.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의 가운데 시인을 등장시키려고 하는 로댕의 시도가 벗은 채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 즉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독립해서는 예술적으로 개화하는 듯하였으나 실패하고 불우한 삶을 살아간 끌로델이 만든 것 중에도 비슷한 모습으로 만든 것이 있어서 로댕이 끌로델의 작품을 모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옥의 문`은 끌로델이 로댕의 조수로서 작업을 도운 작품인 것이다.
제프 쿤스는 1955년에 태어난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쿤스는 방향을 전환하여 꽃과 잔디로 만든 강아지 모양의 대형 조각물 `강아지 Puppy(1992)`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높이가 13m에 달하고 2만개의 화분으로 장식된 이 조각물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동심을 자극하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스튜디오를 공장처럼 가동하기 위하여 30여 명의 조수를 고용하여 작품을 생산한다. 아이디어는 내지만, 실제 제작은 전문기술자들의 몫이다.
매끈한 처세술로 끊임없이 투자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그의 명성으로 스폰서를 괴롭히는 악명 높은 예술가가 된 것이다.
이렇듯 쿤스처럼 제작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로댕처럼 거푸집만 혼자 만들고 주물은 남에게 맡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가수이면서 방송인 한 사람의 그림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부분 국민들은 그를 가수나 방송인으로 알고 있지 화백으로는 생소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화수(畵手:화가+가수)`라고 자칭한 그는 현대미술은 `이름미술`이다, `작가가 유명한 이가 아니라면 그림 수천 점을 남긴다 해도 모두 헛것이다`라고 그의 책에 적은 것을 보면 이 작가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번 대작(代作) 화가의 폭로 직후 그는 미술계의 작업 관행일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그림 크기가 대체로 대작(大作)도 아닌 작품을 남을 통해 완성한 후 본인 사인만 한다는 논리는 앞뒤가 안 맞는다. 그것도 8년 동안에 300여 점이 넘는다니 관행이란 주장에 대해 어렵게 생활하는 작가들에게는 공분을 살만하다.
수년전 어느 여배우의 한국화작품이 수천만원에 팔렸다는 보도가 머리를 스친다. 가끔씩 공모전에서 대작이나 대필이 발생되어 문제가 되기는 했으나 대작이 갤러리를 통해 매매가 된다하니 예술의 도덕적 정신은 물질에 얽매여 사라진 사회가 된 것 같다.
배우나 가수의 이름으로 그림을 갤러리에 걸고 시장에 매매하는 건 작품의 가치보다 연예인으로서의 이름값이라 본다.
`나의 모든 작품은 내 손으로 그린다. 보조 작가를 쓰는 건 예술과 작가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한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말이 생각난다. 곧은 정신이 깃든 참된 예술품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