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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신공항과 계포일낙(季布一)

등록일 2016-05-25 02:01 게재일 2016-05-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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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곤영 대구본부 부장
▲ 이곤영 대구본부 부장

사기 계포전에 초나라 항우 휘하의 계포(季布)라는 장수는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이 강해 한 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키기로 유명했다. 어느날 흉노족의 선우가 당시 여태후를 조롱하는 편지를 조정에 보내자 이에 진노한 여태후는 흉노 징벌을 위한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이에 여씨 일문의 딸을 맞아서 여태후의 총애를 받고 있는 상장 번쾌가 나서며, “저에게 10만 병력을 주십시오. 소신이 오랑캐들을 쓸어 버리겠습니다”라고 큰소리쳤고 신하들은 번쾌에게 잘 보이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계포는 “10만으로 흉노를 치겠다는 것은 아첨하기 위한 망발입니다. 번쾌의 목을 자르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신하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계포의 목숨도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태후는 즉시 폐회를 명했고 다시는 흉노 징벌을 입에 담지 않았다. 여태후는 계포의 신의를 믿고 이 사건을 덮었던 것이다.

그래서 `계포는 한 번 약속하면 그뿐이다`라는 `계포일낙`(季布一·한번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이란 사자성어가 생겼고, `황금 백근보다 계포의 말 한마디가 낫다`는 속담도 있다.

약속이란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약속을 해놓고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 영남권신공항을 두고 부산이 벌이는 행태는 한 마디로 이판, 저판도 안되고 이판사판으로 붙어도 안될바에는 갈아엎고 다시 판을 짜자는 것이다.

영남권신공항은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무산시켜 영남 5개 시·도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러나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재추진돼 2014년 영남권 항공수요 조사에 이어 지난해 신공항 관련 5개 시·도단체장 합의로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에 들어갔다. 겨우 죽었던 것을 숨을 붙여놓은 것이다.

5개 시·도 단체장들은 과열된 유치경쟁과 정치권의 개입으로 인해 2011년 백지화 결정과 같은 신공항 건설 자체가 무산된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 당시 용역을 외국기관에 맡기고, 용역기간은 1년으로 하며, 용역 과정에서 유치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및 한국교통연구원(KOTI) 컨소시엄과 계약을 체결하고 용역 결과가 나오면 입지평가위원회 등 별도의 검토 없이 6월 말까지 결과를 발표하며, 신공항 건설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하는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부산시는 5개 시·도 단체장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상생이 아닌 독자생존을 위한 길을 걷고 있다. 부산시는 정부가 자제를 요청했던 신공항관련 토론회 등을 연이어 개최했고 4·13총선때는 정치권까지 끌어들여 정치 쟁점화했다.

신공항입지를 결정할 연구용역 결과 발표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자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 17일 청와대 관계자를 만난데 이어 지난 20일에는 국토교통부를 찾아 가덕도에 활주로 1본짜리로 신공항이 건설되도록 해주면, 활주로 1본 건설 비용을 대구시의 K2 이전비를 지원하겠다고 상생방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막판까지 도를 넘고 있다.

최근 가덕도를 방문해 노골적으로 유치전을 벌였으며, 대응을 자제하던 경남·경북·대구·울산 4개 지역 시·도지사가 `신공항 유치 경쟁을 벌이지 말라`고 경고장을 날렸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특히, 4개 시·도지사의 밀양 회동에 대해 신공항 입지 선정에 정치적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부산시는 유치 자제 약속을 어긴 적도 없고 어길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등 오히려 4개 시·도를 비난하고 있다. 부산시의 이 같은 행태는 신공항 후보지인 가덕도가 밀양에 비해 BC는 물론 상생, 여론 등 모든 면에서 뒤지고 있다는 점을 감지한 것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부산은 아예 이판을 갈아엎고 새로 판을 짜자는 것이다.

신뢰를 상실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이번 영남권 내 갈등으로 향후 부산은 영남권 내에서도 자칫 고립될 수도 있다. 영남권신공항은 5개 시·도의 접근성을 높여 영남경제권에 활력을 높여주기 위한 사회인프라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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