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달력은 신록으로 넘실거리는 5월이다. 그런데 시간은 5월과 6월을 건너뛰었다. 분명 날씨 뉴스만 보면 지금은 불볕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한 복판이다. 다급한 아나운서의 말을 들어보자. “오늘 경기도 동두천은 기온이 34.2도까지 올라갔습니다. 폭염주의보는 나흘째 이어졌습니다.” 지난 주 전국 많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누가 이 날씨를 5월 날씨라고 할까.
문제는 폭염뿐만 아니다. 미세먼지 주의보, 황사 주의보, 자외선 주의보, 오존 주의보 등 폭염보다 우리를 더 긴장시키는 주의보들이다. 이들이 주의보로 끝나면 좋겠지만, 자연은 자신들의 경고를 무시한 인간에게 주의 단계를 넘어 경보, 나아가 중대 경보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자외선 차단제, 오존 마스크 등을 만들어낸다고 우쭐대는 우둔한 인간들에게 자연의 경고는 한낱 잔소리에 불과하다.
“경기도는 22일 오후 5시를 기해 안산, 안양 등 11개 시에 오존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오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가슴 통증, 기침, 메스꺼움 증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심할 경우 기관지염, 심장질환, 폐기종, 천식이 악화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나 노약자, 호흡기질환자, 심장질환자는 가급적 야외활동을 자제해 주세요.”
같이 뉴스를 보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 나경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빠, 나 이제부터 나가서 놀면 안 돼? 도대체 오존이 뭐길래 밖에서 놀지 못하게 해?” 활동성 강한 아이가 야외활동을 자제해달라는 말에 곧 울음보를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필자를 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니야, 나가서 놀아도 돼. 그런데 너무 오래 놀지 마.” “그래, 그럼 나 잠시 나갔다 올게.”하며 놀이터로 뛰어나갔다. 마스크도 없이,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지 않고 뛰어가는 아이의 즐거운 뒷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몇 번이고 망설였다. 그리고 자외선 차단제 보다 더 강하게 말했다. “조금만 놀다 와!” 나경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친구가 기다리는 놀이터로 나갔다. 멀리서보니 그 친구는 모자와 마스크는 물론 온 몸이 하얗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있었다.
아이가 들어오면 오존에 대해 설명해 주기 위해 오존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다. 오존은 산소 분자에 산소 원자가 결합한 O3라는 것을 과연 나경이가 이해할지. 또 오존은 일반적으로 자동차 등에서 나오는 질소 산화물, 주유소 같은 곳에 가면 냄새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굉장히 강한 자외선하고 반응한다는데, 이를 광화학반응이라고 하고 이 반응 때문에 오존이 생긴다는 내용은 또 어떨지.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고 메스꺼워졌다. 나경이가 걱정되어 잠시 놀이터에 가보니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너무도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존의 2가지 얼굴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오존은 지상에서부터 10km 이상의 높이인 성층권에서는 오존층을 형성해서 피부암 등을 유발하는 자외선을 흡수해준다. 이런 곳에서는 우리에게 좋은 역할을 하는데 우리가 숨 쉬고 사는 대륙권에서는 인체에 굉장히 해로운 물질이다.” 당장이라도 나경이를 불러 집으로 오고 싶었지만 참았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올해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할 확률이 99%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온이 급격히 오르는 이유에 대해 급속한 지구 온난화를 지적했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실천이 안 된다. 온몸이 벌겋게 변해 들어 온 아이가 화를 낸다. “아빠, 참 이상해. 우리 학교 옆에 있던 산이 없어졌어. 그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자라고 있어. 이게 말이 돼.” 우리는 아무리 더워도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기후 비상사태는 분명 인재(人災)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