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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학교 네트워크

등록일 2016-05-12 02:01 게재일 2016-05-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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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잔인한 4월이 끝났다.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다.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지만 여전히 이 나라 국민들은 고난의 길 위에서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언제 허리 한 번 쭉 펴고 눈부시도록 파란 5월의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을까. 학생들은 껍데기 시험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어른들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경제 불황에 빠져 겨우 숨만 쉬고 있다.

수식어가 많은 5월답게 기념일도 참 많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등 어느 하나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날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 제사 돌아오듯”이라는 속담처럼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5월의 기념일들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또 살아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힘이 들어도 이런 기념일들을 정성껏 챙긴다. 바쁘다는 핑계로 많이 놀아 주지 못한 아이들, 같은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부모님과 선생님! 그들은 분명 우리의 삶의 이유이다. 5월엔 이들 기념일 말고도 민주화 운동 기념일, 성년의 날, 발명의 날, 세계인의 날, 부부의 날, 바다의 날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날들이 참 많다.

5월의 많은 기념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사랑과 감사다. 우리는 안다. 고마움, 미안함, 희생, 배려, 나눔 등이 5월과 동의어(同義語)라는 것을. 이들 단어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난 말들이다. 고맙기에 더 미안하고, 미안하기에 더 사랑스러운 것이 곧 사람이다.

지난 주 토요일 산자연중학교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내걸렸다. 만국기만큼 많은 사람들이 산자연중학교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비록 저마다 말씨는 달랐지만, 사람들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운동장 한편에서는 아버지들이 아이들을 위해 숯불을 피웠고, 또 한편에서는 어머니들께서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깔스럽게 차렸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기량을 뽐냈다. 점심 상 앞에서 학생들은 모두가 한 가족이 되었다.

점심시간 이후 학부모들이 체육관으로 모였다. 학부모들의 손에는 정성이 가득 담긴 보따리들이 들려있었다. 체육관 안에는 학부모들이 미리 가져다 놓은 물건들이 산을 이루었다. 보따리를 풀 때마다 그 속에서는 잘 말린 햇살 향 가득한 옷가지들과 신발, 학용품 등이 쏟아져 나왔다. 학부모들은 그것들을 다시 택배 상자 안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상자 위엔 `몽골 쎈뽈초등학교 후원 물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 박스가 무려 72개가 넘었다. 포장을 끝낸 학부모님들의 얼굴엔 비오듯 흐르는 땀과 함께 환희의 찬가가 울려 퍼졌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야기 같지만, 이 이야기는 지난 주 산자연중학교 가족 운동회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안전사고 걱정 때문에 수학여행조차 못 가게 하는 학교장이 있는가 하면, 치맛바람 풀풀 날리는 시간 때우기 식의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해버린 체육대회가 부지기수인 일반학교의 삭막한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아무리 세상이 급변해도 우리는 우리가 꼭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들이 있다. 유네스코는 이런 인류의 문화재들을 세계 문화유산이라고 해서 보전 하고 있다. 교육 또한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교육이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유네스코 학교 네트워크라 하여 이런 교육을 발굴 보존하고 있다. 비록 교육부와 경상북도 교육청은 외면하고 있지만, 유네스코는 산자연중학교의 교육 가치를 인정해 올해 산자연중학교를 유네스코 학교로 지정하였다. 유네스코 학교들에 의해 절망의 늪에 빠진 우리 교육이 다시 희망을 노래할 수 있길 가정의 5월에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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