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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시험은 가라!

등록일 2016-04-28 02:01 게재일 2016-04-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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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어느 달 혼란스럽지 않은 달이 없는 우리 사회지만 그 중에 혼란이, 아픔이, 상처가 가장 큰 달이 4월이다. 그래서 4월은 시인들에게 특별한 달이다. 4월 시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학창시절에 누구나 외쳤을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하지만 껍데기 뿐인 학교에서 배웠는지 대한민국 4월은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았다. 그러기에 어쩌면 슬픔도, 부끄러움도, 희망도 모두 껍데기인지 모른다.

필자는 많은 학생들에게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가르쳤다. 껍데기는 거짓, 아부, 증오, 폭력 등 형식적이고 영혼 없는 것들 전부라고, 반면에 알맹이는 진실, 희생, 배려, 희망 등 기본적이고 영혼 가득한 것들이라고! 그리고 수업 마지막에는 항상 너희들이 이 사회의 알맹이가 되라고! 그래서 제발 이 나라를 살맛나는 사회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필자 또한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와 같은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그런데 슬프게도 지금 필자는 껍데기가 되어 있다. 그것도 속이 텅텅 빈, 어떤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껍데기. 그런 필자가 학생들에게 알맹이를 말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 알맹이가 되겠다던 학창 시절의 그 맹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생각해보면 그 다짐들은 학교 시험이 끝나는 순간 모두 껍데기로 변해버렸다.

이 나라 사람들은 시험의 후예들이다. 그런데 그 시험이라는 것이 껍데기 시험이다. 즉 이 나라 사람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시험을 통해 껍데기로 변했다. 이 나라 시험은 학생들의 생각을 틀에 가두기로 유명하다. 그 틀은 절대 창의성 같은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 나라 시험에서, 아니 이 나라에서 창의와 창조는 곧 오답(誤答)이다.

창조 경제, 창조 경영, 창조 교육 등 현 정부의 키워드는 창조이다. 정부는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창조라는 것이 지금의 위기와 혼란을 해결해 줄 것처럼 떠들어댔다. 하지만 해결방법이라고 믿었던 창조가 오히려 더 큰 혼란만 야기하고 있다. 혼란은 믿음, 즉 신뢰부터 상처를 냈다. 금이 간 믿음에서는 불신이 독버섯처럼 피었다. 불신은 조직 사회에서 믿음이라는 연결 고리를 끊어버렸다. 모래 알 사회에서는 조직의 힘이니, 단합, 협동 같은 말은 전설이 된지 오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대로 하자면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볼 것도 없는 답에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이 즈음되면 분명 초인이나 선각자, 아니면 영웅이 나타날 법도 한데 정말 아무리 둘러봐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앉아서 우리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도 정해져 있다.

물론 “아니다”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교육이다. 그런데 지금의 붕어빵 교육으로 절대 할 수 없다. 형식과 껍데기만 난무한 지금의 교육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역시 답이 안 보인다. 우리의 교육을 요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이 학교 현장에 존재하는 한 절대 새로운 교육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극단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교육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는 공염불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곧 가정의 달 5월이다. 전 국민이 행복한 5월을 맞이하기 위한 간절한 바람으로 외친다. 제발 4월이 가기 전에 학교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 시험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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