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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등록일 2016-04-27 02:01 게재일 2016-04-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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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형 정치선임기자(국장)
▲ 이창형 정치선임기자(국장)

1990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내탓이오` 캠페인을 벌였다. 정권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인화 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반향은 뜨거웠다.

차량에 `내탓이오`가 새겨진 스티커 부착이 유행이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도 자신의 승용차에 스티커를 붙이고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 운동은 나라 전체로 확산됐고 1996년에는 137개국에서 정신운동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20대 총선 서울 종로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꺾고 6선 고지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는 “나라 경제가 거덜나게 생겼는데 전 정권 파헤쳐서 뭐가 되겠나”라고 했다. `이명박·박근혜정권 8년간의 적폐`에 대해 청문회를 하자는 야권 일각의 주장에 그는 “책임 추궁을 하는 게 앞설 정도로 우리 형편이 넉넉지 않다”고 했다. 더민주는 이번 총선에서 `경제심판론`을 내세웠다. 여러 정치공학적인 셈법이 작용했지만 국민들은 이명박·박근혜정부 8년의 경제정책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표로 심판했다.

`지나다니는 강아지의 일당도 3만원`이라는 경남 거제, 통영과 울산은 지금 조선불황으로 침몰직전에 있다. 한때 공장부지를 못 구해 애를 먹었던 포항철강공단 곳곳은 문닫은 공장이 부지기수다. 구미공단은 대기업의 철수로 공장분할매각이 유행이다. 중소도시 곳곳의 식당은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새봄 활력이 넘쳐야 할 도시 곳곳의 밤거리는 암흑천지다. 생산이 올스톱이고 소비가 죽어가고 있다. 죽음의 도시 다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직후인 지난 18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고만 밝혔다. 새누리당이 참패한 총선 이후의 첫 메시지에 대해 야권은 “성찰과 반성이 결여됐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총선 하루 전 국무회의에서는 경제·민생법안의 처리를 지연한 19대 국회를 비판하면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해서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20대 국회를 만들어달라”고 강조했다.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있도록 해달라”며 꾸준히 제기해 온 국민 심판론의 연장선상의 발언이었다.

선거 전 이처럼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던 박 대통령은 선거패배 이후에는 침묵모드를 이어갔다. 각종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했을 때 역대 대통령의 위기인식은 늘 논란이 돼 왔다. 초기에는 원론적인 수준의 메시지를 냈다가 비판이 드세지자 고강도의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수사학적인 사과는 물론,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통해 국민들에게 사죄했다.

박 대통령은 대 국민 소통행보 출발점으로 지난 26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언론을 매개로 총선 이후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중앙언론만을 통해 메시지를 간접 전달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청와대의 위기인식이 너무 안일하다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패장들이 모두 물러난 새누리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네 탓 공방`이 여전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국민들은 주목하고 있다.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라는 말이 있다(논어 위령공 편). 총선이 끝난 지 보름여가 되지만 여야는 여전히 당권을 놓고 이전투구중이다. 석고대죄한다며 멍석을 깐지가 엊그제인데도.

허물을 자기에게서 구하는 `반구저기(反求諸己)`는 없고 `네 탓`만 있는 정치를 보니 20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 또한 허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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