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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잠(履霜箴)의 교훈

등록일 2016-04-20 02:01 게재일 2016-04-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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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이상(履霜)이란 주역의 곤괘(坤卦)에서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일의 조짐을 보고 미리 그 화를 경계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청백리인 주세붕(1495~1554)은 중종 23년에 지어 올린 그의 이상잠인 무릉잡고(武陵雜稿)에서 `작은 일에서 큰 의미 찾는 자는 흥하고, 쉬운 일에서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망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입법이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서리가 내릴 때 얼음이 얼 것을 알고 미리 대비한다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유비무환을 강조한 것이며, 만약 그렇지 못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아직 얼음도 얼지 않았는데 서리 좀 내린 걸 가지고 무얼 그리 걱정인가`라고 말한다면 얼마 안 가 곧 얼음이 얼고 난 뒤에는 국가나 국민 모두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선거란 중의를 모아 국가를 위해 일할 사람을 고르는 일이다. 선택을 받고자했던 그들은 민의에 복무하겠다며 진실성 없는 땅바닥 읍소, 현란한 퍼포먼스, 그리고 악어의 눈물로 호소한다. 난무하는 후보자들의 감언은 저열한 유권자들의 이설을 만나 비로소 은밀하게 화동한다. 이렇듯 감언과 이설은 결코 홀로 서지 않는다. 20대 입법부를 대표할 국민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300명의 의원이 선택됐다. 그들은 임기 동안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들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올바른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고르는 입장에서의 시민들의 깨어 있는 냉철한 의식이 중대하다. 아일랜드 출신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정치가였던 에드먼드 버크는 `변화의 수단이 없는 국가는 보존의 수단을 갖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계파싸움이나 당쟁이 시작되었다고 연일 언론에 보도된다. 이런 반복되는 구태의연한 정치행태의 결과로 그들이 남긴 가상한 위민의 구호는 대개 형해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제도는 의젓하나 실종된 민주정신의 책임은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에게 있다.

`일어탁수(一魚濁水)`라는 말이 있다. 한 마리 물고기가 물을 흐리게 한다는 뜻으로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집단 전체나 여러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침을 비유하는 말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흐려 놓는다`는 말도 그 궤를 같이 하는 의미의 속담이다. 그러나 미꾸라지가 증거로 보인 것은 겉보기에 평온한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맑은 방죽 물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더러움을 은폐하고 있었는가 하는 본질의 문제를 들춰낸 것이기 때문이다. 감춘다 하여 끝내 드러나지 않을 리 없으며 드러내지 않으면 더러움은 오히려 더 깊어진다.

이곡(1298~1351)의 가정집(稼亭集)에 `목민관 한 사람의 마음이 의를 추구하느냐 이익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백성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적고 있다. 이 글은 선생이 합포(合浦)의 목민관으로 나가는 관리를 전송하며 지어준 글이다. 현대국가에서의 목민관이라 함은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자치단체장과 모든 정책결정의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을 아우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다스림에 있어 공직자들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정책은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고 그 정책이 바로 국가와 백성의 안위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100년 전 대한제국이 일제에 넘어가자 `한 숟갈의 밥이나 한 모금의 물도 모두 왜적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 하여 거부한 최익현 선생의 정신은 조선을 조선이게 했고, 합방령을 접한 그날 황현(1855~1910)은 절명시를 짓고 탄식하며 절명하였으니 이는 나라 위한 선비의 곧은 정신이 깔려있다고 하겠다. 반면, 한일합방의 공로작과 은사금에 기꺼워 한 당시의 반국가적 관료들의 행태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부류들에 의해 또다시 나라 잃고 이방인의 슬픔을 당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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