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나간 역사는 다가올 미래의 거울이기에 현재를 비추어보면 나아갈 방향의 해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역사의 교훈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는 것이다.
4·13 총선이 끝난 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민심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사납게 출렁이면 작은 돛단배 하나를 뒤집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는 것을 확인한 일대 혁신적 변화였다. 졸지에 정치의 주연과 조연이 바뀌고 정치적 지형을 새롭게 그려야 하는 격랑의 시기에 중국 역사에서 불꽃같은 삶으로 한 시대를 보낸 범려와 문종, 장량과 한신이라는 대비되는 4인의 인물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가를 한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와신상담`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떠오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 부차와 월나라 구천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맞수였다. 그리고 사면초가로 유명한 초, 한의 항우와 유방 또한 거대한 중국의 지도를 바꾸어 놓은 훨씬 큰 스케일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이들 중 역사적 승자로 기록되고 있는 구천과 유방은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뛰어난 다수의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월나라의 구천은 범려와 문종 등이 있었고 한고조 유방은 장량, 소하, 한신, 번쾌 등 걸출한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중에 범려와 장량의 난세와 치세에 대처했던 처세법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천을 지근에서 보좌했던 범려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책사로 거론되는 대표적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후일 구천이 춘추5국을 평정하기까지 뛰어난 책략으로 보좌하여 부귀영화가 보장된 일등 공신의 반열에 올랐을 때 세상을 평정하고 나서는 자신의 존재가 그리 환영받지 못할 것을 예견하고 그 유명한`토사구팽`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채 벼슬자리까지 팽개치고 떠나버린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쟁취한 유방은 중원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을 사마천 사기의`고조본기`장량 부분에서 본영에서 지략을 짜고 천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점에서 나는 장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서술하고 있다. 엄청난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고 최후의 승자가 된 한고조 유방은 뛰어난 능력을 지닌 개국 공신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극도의 두려움이었다.
장량은 혜안의 지략가답게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예외 없는 숙청의 굴레를 씌울 유방의 계략을 읽고 유방의 군사를 피해 토가족이 살고 있는 청암산에 은거한다. 그는 산수가 뛰어난 이곳에서 미개한 토가족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농사법을 전수하고 선진 문물을 보급하여 민초들의 존경을 받으며 천수를 누렸다. 이에 비하면 유방의 개국에 절대적 기여를 한 대장군 한신은 비정한 권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결국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여태후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물건이나 사람은 필요한 곳과 쓰일 곳에 있어야 하고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감추고 물러날 줄도 아는 지혜가 더욱 절실한 지금이다. 시인 이형기 선생은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하고 있다.
언젠가는 가야하는 인생을 뒤돌아보고 사라지는 것, 가버리는 것, 떨어지는 것들은 적절히 아름다운 때여야만 그 떠남이 빛이 난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닫게 하는 문장이다. `정치의 계절`에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고 현명하게 처신하는 것도 똑같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치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권력의 음지에 있지만 욕심이 없어 밝고 행복했으며 양지에만 있었지만 어둡고 불행했던 그들의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