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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 그리고 `나쁨`

등록일 2016-04-18 02:01 게재일 2016-04-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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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봉준<br /><br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오예!)” 라디오를 즐겨 듣는 청취자라면 이번 한 주 가장 많이 들었을 노래, `벚꽃 엔딩`의 한 소절이다. 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치자면 목련, 개나리, 진달래, 철쭉 등을 열거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 벚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순간도 벚꽃길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러저러한 이름을 붙인 벚꽃 축제가 한창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봄을 노래하는 많은 곡들 중에서도 버스커 버스커(Busker Busker)라는 그룹이 부른 이 노래가 유독 많이 애창되는 것 같다.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손잡고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길을 걸으며 사랑을 속삭이고 싶어 하는 청춘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아니, 굳이 청춘으로 한정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오십을 넘긴 중년 부부의 나란히 걷는 모습이면 어떻고, 팔순을 넘긴 노부부의 맞잡은 손이면 또 어떠하랴. 봄바람에 비 오듯 흩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라면 그 누구나 한번쯤 낭만에 젖어 그 길을 걷고 싶어질 테니 말이다.

닷새 전 일이다.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간에 귀가를 서둘렀다. 그리고 마침 아이가 학원을 마치는 시간과도 맞아 떨어진 덕분에 오래간만에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틈에 아들 녀석의 모습도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걷는 모습이 여느 때와는 좀 달랐다. 평소 걱정스러울 만큼 들고 뛰던 녀석의 걸음걸이가 여간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한껏 느릿느릿했다. 잠시 후 다가온 녀석을 보는 순간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아들 녀석의 한 손에는 물이 반쯤 채워진 종이컵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소복이 꽃을 피운 한 가지의 벚꽃이 담겨 있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길가에 늘어선 벚꽃 나무에 꽃들이 만발한 걸 보고서는 마음이 동했단다. 그래서 한 가지를 꺾었고,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께 종이컵 하나를 얻어 시들지 말라고 즉석 화병을 만든 것이다. 집에 갖고 돌아와 제 책상 위에 두고 감상할 생각이었단다. 사내놈치고는 꽃을 좋아하는 성품이긴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하고 미안해졌다. 곧바로 집에 들어가지 말고 벚꽃 구경하러 드라이브할까 물었더니 그건 또 싫단다. 학원 숙제, 학교 숙제, 그리고 곧 다가 올 중간고사 시험 준비로 시간이 없단다. 몇 번을 졸라도 싫대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전, 아들의 방을 살펴봤더니 이미 시들어 버린 종이컵 화병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다시 아이의 학원 시간에 맞춰 학원 앞으로 갔고, 다짜고짜 아이를 차에 태운 채 가까운 거리의 벚꽃 길을 달렸다. 처음에 짜증을 내던 아이도 어느새 꽃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해가 저문 탓인지 꽃의 색감이 분명치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선명하게 꽃을 보여주려고 달리는 차의 창문을 내렸지만, 이내 창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흐릿한 시야는 해가 저문 탓만이 아니었다.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미세먼지 농도 `나쁨`.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길을 아이와 함께 걷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잠시 걸어보면 어떨까, 잠시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아빠의 과감한 시도는 과민한 엄마의 저항에 부닥쳐 무참히 묵살되었다. 미세먼지 농도 `나쁨`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된다. 그리고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침묵의 봄`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가로막은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다”라고. 우리 스스로가 진짜 `벚꽃 엔딩`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매우 `나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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