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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선서식을 기리며

등록일 2016-04-07 02:01 게재일 2016-04-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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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위덕대 교수·간호학과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아름다운 4월이 열리는 첫 날, 우리대학 간호학과에서는 제5회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가졌다.

이름하여 나선식이라 불리는 이 행사는 나이팅게일의 희생과 봉사정신을 기리며 예비간호사로 생명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행사이다.

학생들의 손에 꼭 쥐어진 촛불들이 다함께 빛을 발하며 강당 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들의 눈빛은 따뜻하게 단상을 응시하였고, 입술에서는 천상의 화음이 울려퍼져 온 마음을 감싸안은 듯 했다.

새삼 30여년 전, 나의 학창시절 가관식 기억들이 하나, 둘, 켜지는 촛불과 함께 떠올랐다. 하얀 원피스 가운에 블루 컬러의 망토를 걸치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내 앞에는 제법 간호사의 기품이 흐르는 누군가가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칼날 같이 빳빳하게 풀 먹인 간호사 캡이 은사님들의 손으로 내 머리 위에 씌워지던 순간, 나는 평생 내가 지키고 가야 할 책임과 약속, 오래된 지혜들이 아름다움의 왕관처럼 우뚝 솟아오르는 것 같은 황홀감을 느꼈다. 그리고 빨간 촛불들이 동료와 동료들의 손으로 이어지며 어둠을 밝혀나갈 때, 내 심장은 그 숭고함에 대한 박동으로 전율하였다.

간호사로서 어언 20여년을 임상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힘들고 지칠 때면 그 날 내 머리위에 씌워지던 하얀 왕관과 촛불의 맹세가 나를 일으켜 세우곤 하였다.

오늘 나의 제자들, 아니 나의 간호사 후배들은 마음속에 무슨 보석을 담았을까? 시대의 물결에 따라 이제는 간호사 캡이 없어지고 대신 간호사들은 가슴에 전문직 간호사의 상징인 휘장을 달고 있다. 면허 간호사만이 달 수 있는 휘장에는 비둘기와 하트, 식물의 줄기와 잎, 봉오리가 새겨져 있고, 여기에는 생명 보호와 사랑,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바탕으로 빠른 치유와 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자들의 가슴에 휘장을 하나 하나 달아주며 “훌륭한 간호사가 되세요”라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이제는 후배들을 인도하는 연배가 되었구나.” “내가 그네들에게 훌륭함에 대하여 말할 수가 있을까.” 다시금 간호사에 대하여, 그리고 돌본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간호사 20여년차. 이미 연차로서 셀 수 없는 세월이었다. 당돌하게도 아픈 이들의 희망이 되고자 뛰어들었던 그녀, 그러나 제대로 진정한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수없이 받기만 하였다. 오른손이 절단되어 서툰 왼손으로 또박또박 눌러 써서 건네주던 편지, 밤샘 하며 고생한다고 따뜻하게 잡아주던 할머니의 거친 손, 어른이 되어서도 `누나`라고 부르며 따라 다니던 영원한 소년.

그들이 나에게 원했던 것은 간호사이기 이전에 인간이었고, 지식과 합리성으로 무장된 전문인이기보다 아파할 수 있는 땨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었다.

난 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순수한 행복과 가슴 벅찬 눈물과 삶의 보람을 선사 받았던가. 그네들이 건네준 사랑과 행복이 있었기에 나는 매일 교단에서 나의 제자이자 후배들에게 말할 수 있다. 간호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그리고 함께 되어가는 것이라고. 휘장수여와 촛불의식을 마치고 선·후배간에 노래와 춤으로 화답하는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나의 제자이자 후배들! 참으로 생기발랄하고 희망에 찬 모습들이다. 그 순수하고 해맑은 웃음들을 바라보면서 난 기도한다.

“나의 제자들이여, 오늘의 이 열정과 떨림을 영원히 간직하여라.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 그 큰 날개를 활짝 펼치고 너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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