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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에게 동시집 선물하기

등록일 2016-04-05 02:01 게재일 2016-04-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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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지난달 26일은 포항교육지원청부설영재교육원 중언어반 첫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언어반이라 하면 어떤 수업을 하는 곳일까 궁금하겠습니다. 문학 감상과 창작, 논리와 문법, 독서토론 등을 배우는 곳입니다. 저는 올해 새로 뽑힌 포항 지역 20명의 중학생들과 함께 시 감상 수업을 했습니다.

돌아가면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끝낸 후, 작년 12월에 출간한 동시집 `지각 중계석`(문학동네·2015)을 나눠 줬습니다. 중언어반 학생들에게 20~30분 정도 자유롭게 동시집을 읽을 시간을 줬습니다. 그런데 동시집을 받아든 중언어반 학생들의 표정이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세상에! 동시집을 나눠주다니!`, `뭐야? 지금 우리한테 동시를 읽으라고?`, `아…. 벌써부터 따분하고 하품이 나네.`, `시랑 담 쌓은 지 오랜데…`, `오 마이 갓!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중언어반 학생들의 동시집 독후감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낸 독후감 첫머리를 읽으며 저 또한 `오 마이 갓!`을 외쳤습니다. 불안한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소설이나 과학책만을 읽었기 때문에 동시집이 의외였고 또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나는 동시집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저 동시들은 모두 단순하고 지루하며 재미없다고 생각했었다”, “동시…, 언제부터 시와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도서관에 가서도 수필이나 소설과 같은 종류의 책만 찾아다녔지, 지나가다 시집이 있는 구간이 있어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나는 항상 시를 따로 읽지 않고 그냥 학교에서 배우는 대로만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집을 읽어봤다.”

태어나서 동시집이나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건 처음이라는 몇몇 중학생의 글을 보며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요? 자괴감에 한참을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영재교육원에 중언어반 중학생이 이 정도라면….

그래도 천만다행입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동시집 한 권을 다 읽은 중언어반 친구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이 책은 내 생애 거의 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시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중해서 정말 인상 깊게 보았고, 읽은 지 며칠 된 지금까지도 아직 선명하고 생생하게 내용이 떠오른다. 내가 생각한 이 책은 마치 비빔밥 같다. 재미있는 맛, 통쾌한 맛, 감동이 있는 맛, 오묘한 맛 등이 모두 섞여서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모두 맛있는 맛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맛의 시를 고른다면, `고래할아버지`와 `100원`이라는 시다”

“나는 조금의 기대도 없이, 한숨을 쉬며 책을 받아들었다. 내가 이때까지 아무 근거도 없이 동시집에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지금껏 내가 생각해왔던 동시집의 이미지와 내가 읽고 있는 동시집의 이미지는 너무 달랐다. 이 동시집의 시들 중에는 읽는 이들이 같이 공감을 하며 읽을 수 있는 시, 읽으면서 슬며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시들도 있었다. 시들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동시집에 관심이 조금 생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는 `할머니의 화장품`이라는 시였다. 그 시에서는 눈 침침한 할머니를 위해 엄마가 네임펜으로 또박또박 번호와 글씨를 써 놓았다. 그리고서는 할머니에게 애가 단 엄마는 타박타박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눈 침침한 할머니를 위해 네임펜으로 또박또박 번호와 글씨를 새기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이처럼, 서로 아끼고 존중하면서 배려하고, 도와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학부모님, 선생님께 간곡히 당부 말씀 드립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동시집을 선물해주세요. 요즘 좋은 동시집이 참 많습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 동시집을 선물해주세요.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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