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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

등록일 2016-03-31 02:01 게재일 2016-03-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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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영 민
마당가엔 라일락이 피고 뒷산에선 뻐꾸기가 울었다

볕이 좋아 아내는 이불 빨래를 널었다

병든 아버지를 위해 나는 수돗가에서 닭을 잡았다

더 마르기 전에 모습을 남겨두어야 한다며

아버지는 대문간 옆에 양복 상의만 갖취 입고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아버지는 웃고

백숙은 솥에서 저 혼자 끓고

하지만 백숙은 살이 녹을 때까지 더 오래 끓이는 것 나는 아버지의 얼굴 속에 5월의 라일락과 뻐꾸기 소리, 우아하게 지붕 위로 날아오르는 구름을 담고자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모여 백숙을 먹었다

참으로 따스한 풍경 한 컷을 본다. 볕이 좋고 라일락 꽃 향기가 퍼지고 뻐꾸기 소리 들려오는 어느 봄날, 삶의 시간을 얼마 남겨놓지 못한 아버지와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기 위해 시인은 닭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아버지의 마지막 잔영을 잡아두려는 시인의 간절함이 녹아있는 재밌고 눈물겨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고영민의 최근 시집들에는 이런 풍경들이 즐비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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