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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 없는 두 가지

등록일 2016-03-28 02:01 게재일 2016-03-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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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봉준<br /><br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

이제서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4·13 총선의 공천(公薦)이 마무리되었다. 지역구에 출마할 당의 후보를 가리기 위해, 그리고 비례대표 후보자의 순위를 결정하기 위해 모든 정당은 그야말로 혼돈과 파국의 시간을 지루하게 이어왔다.

그러나 뒷맛은 너무나 씁쓸하다. 전혀 개운치 않다. 한국의 대표 정당들이 보여준 일련의 공천 행위가 과연 그 이름에 걸맞은 과정이었던가를 반문하자면, 한 마디로 삼척동자도 비웃을 만큼 유치하기 짝이 없고 치졸하기 그지없는 막장이었다.

공(公)이란 `공적인 것`, 혹은 `숨김없이 드러냄`을 의미한다. 굳이 거창한 정치학적 해석을 끌어 붙이지 않더라도, 즉 문자가 지닌 의미만 놓고 보더라도 근간에 진행된 각 정당의 공천이 과연 공적인 행위였는지, 숨김없이 드러낸 정당하고 정의로운 절차였는지에 대해 떳떳하다 말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염치가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한국 정치에서 `사라진`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이 두 가지가 한국 정치에 애초부터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기에 한국 정치에 `없는` 두 가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듯 싶다.

그 첫 번째가 정당성이다. 오래전부터 어느 정당 할 것 없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허울 좋은 구호를 남발해 왔다. 그 명칭이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든, 상향식 공천이든, 국민 경선이든 이들의 약속은 지켜졌는가. 그리고 각 정당이 새로운 공천 방식을 거론할 때마다 공히 내세웠던 말이 정당성이 아니었던가. 지역 주민을 위해,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일할 일꾼을 정당한 방식으로 공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공천관리위원회가 되었건, 공천심사위원회가 되었건 결과적으로 이 기구들이 보여준 행태들은 지지 정당을 떠나 하나같이 기대이하의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도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이고 제도적 정당성도 보란 듯이 무시해 버렸다. 그러고서도 자신들에게 표를 행사해 달라며 뻔뻔히 손을 내민다.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최고 정점이다.

한국 정치에 없는 두 번째는 참 슬프게도`국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천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영화 `변호인`의 명장면이기도 한데, 이 영화에서 극중 주인공은 “변호사라는 사람이 국가가 뭔지 몰라?”라는 상대방의 공격에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며 대응한다. 그렇다. 국가란 국민이며, 국민이 곧 국가다. 그런데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말이 무엇 때문인지 이미 흘러간 시대의 정치학 교과서에 박제(剝製)되어 버린 단어처럼 낯설게만 느껴진다. 작금의 한국 정치는 정당성만 상실한 게 아니라, 국민도 상실했다. 선거철만 되면 입에 발린 말로 하던 소리가 `국민이 주인입니다` `국민의 종이 되겠습니다`였다. 그런데 이제는 뻔한 거짓말인 이 소리조차 그리울 지경이다. 이제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우리 맘대로 할 테니 투표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라는 배짱인 듯싶다. 이건 파렴치(破廉恥)의 최고치다.

진정 누구를 위한 `새누리`인가. 과연 누구와 `더불어` 살기 위한 정당인가. 또한 어떠한 `국민`의 당인가. 당신들에게 과연 국민이 있긴 있는 것인가. 이렇게 하고서도 4월 13일, 신성한 한 표를 자신에게 행사해 달라는 말이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한 인기 여가수가 선거참여를 독려하는 광고를 들었다. 그날, 나는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과연 투표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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