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의 시 `황무지`가 노래하듯 봄은 정말 잔인한 계절인 걸까?
땅속에서 동면하던 개구리가 놀라 깨어 뛰어나온다는 경칩이 지났지만 꽃샘추위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며칠 째 물러갈 생각을 않는다. 농부들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며 농기구를 정비하는 손놀림이 바빠지고 봄을 재촉하는 매화, 봄까치꽃, 변산바람꽃은 막 꽃망울을 터트렸는데도 말이다.
날씨 뿐 아니다. 경제, 정치, 남북관계 등 시국도 춥기는 마찬가지다.
장기적인 국내 경기 침체로 인해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불만과 장래에 대한 불안이 깊어지는 가운데 4·13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뒤숭숭하고 사상 최대 규모로 전개되는 한미 키리졸브합동훈련,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장사포 발사로 남북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경색 국면으로 치닫는다. 유엔의 본격적인 대북한 경제제재는 북한을 어디로 튈지 모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이렇게 사회 모든 분야가 불안하면 국민들의 심리적 불안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쟁과 불안이 만성적으로 내재화된 세대 2040세대(1967~1996년생)는 여전히 삶이 불안하고 현실에 비관적인데, 국내외적 정세변화 때문에 그 불안감과 비관적 현실 인식은 가파르게 깊어지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기획하고 엠브레인이 지난달 26~29일 수행한 조사 결과를 4년 전의 같은 조사와 비교하면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2012년 2월 조사에서 2040은 42.0%가 `내 삶은 안정돼 있다`고 답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32.6%로 줄었다. `내 삶은 불안하다`는 응답이 58.0%에서 67.4%로 9.4%포인트 증가했다. 20대(69.1%), 30대(67.8%), 40대(65.8%) 모두가 불안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 2040에서 `희망이 크다`는 답변은 4년 전 68.0%였지만 이제는 43.5%로 확 줄었다. `희망이 없다`가 32.0%에서 56.5%로 늘었다. 20대의 경우 4년 전 `희망이 크다`는 응답이 74.0%였다가 이번에는 `희망이 없다`가 51.9%로 돌아서는 등 20·30·40대 모두 부정적 응답이 우세한 쪽으로 역전됐다.
이상화(1901~1943) 시인이 나라 잃은 슬픔을 피를 토하듯 절규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엘리엇의 `잔인한 봄`과 오버랩된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중략)”
일반적으로 많은 시인들은 봄을 `밝음 탄생 생명 이상 기쁨` 등 긍정적이며 희망적 이미지로 표현하지만 엘리엇의 봄과 이상화의 봄은 전혀 딴판이다. 올해의 봄이 바로 그렇다.
삼라만상이 새로운 기운에 감싸인 계절이며, 확연히 달라진 세상을 보여준다. 문학작품이나 미술에 나타나는 그 묘사는 생동하는 세상을 보여주며, 환희의 음률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기도 한다.
시인들이 그려내는 황홀한 시 작품처럼 다양한 변화가 내포된 2016년 `봄`을 기대하는 건 너무 막연한 꿈인 걸까?
봄비로 잠든 뿌리를 흔들어 생명을 일깨워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잔인한 달`로 불리는 4월이 오기 전에 보이지 않는 현실의 벽에 빛이 넘치는 변화가 오면 좋겠다.
정오를 알리는 힘찬 관악기들의 연주 소리의 활기참이 있고, 호박색 노란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봄의 그런, 눈부신 경치라도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빛나는 햇살과 맑은 새들의 노래 소리를 따라 부르며, 겨우내 얼어 부풀은 보리밭을 밟거나 포도넝쿨 가지를 자르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농부들의 밝은 얼굴을 만날 수 있고, 연두빛으로 물든 수양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면사포 쓴 봄처녀가 사뿐히 걸어오는 그런 행복한 봄이 올해도 변함 없이 와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