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흐름이 있다

등록일 2016-01-27 02:01 게재일 2016-01-27 18면
스크랩버튼
손 정 순
오랜 탈진 끝에 청심환을 삼킨다.

혀끝의 아련한 감촉이 논두렁 밭두렁 길로 미끄러지듯 따라가면 비틀대는 기억의 어린 집 한 채, 열네 살 옛길이 내려와 잠시 머물면, 내삼계리를 돌아 사리암 북대암, 아홉 암자를 제집처럼 열심히 오르내린다.

먹장삼 속으로 수없이 번지던 고행의 씨앗들, 그 어린 비구니 다시 세상 밖으로 흘러 흘러갔을 테지만, 서른한 번째 동안거에 드는 여울목, 그 배꼽 아래쯤에서 입 악다무는 깨달음. 수행은 아주 멀리 떠나는 것만 아니었구나.

멈춰선 이 자리가 도량임을, 눈물처럼 꽃뱀처럼 또아리 트는 몸 안팎으로도 여전히 긴긴 흐름이 있다.

아득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인은 기억의 어린 집과 힘겨웠던 비구니의 수행, 다시 동안거에 드는 구도자의 시간을 추적하고 있다. 시인은 청춘의 시간들, 그 욕망과 집착의 유혹을 뿌리치고 방황과 고통의 시간들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고 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발원된 것은 아닐까. <시인>

김만수의 열린 시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