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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하시나요?!

등록일 2016-01-15 02:01 게재일 2016-01-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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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예전에 없던 신조어가 양산(量産)되는 시대다. `혼밥`도 그 가운데 하나다. `혼자 먹는 밥`을 줄인 말이 `혼밥`이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혼밥족`이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가구는 400만을 넘어 전체가구의 27%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나 2020년에는 1인가구가 전체가구의 30%를 점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혼밥족`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 자명(自明)하다.

21세기 들어서기 전만 해도 우리 한국인들에게 `혼밥`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낯설었다. 곰곰 돌이켜 생각해봐도 `왕따`라거나 어떤 특별한 사유(事由)가 아니라면 `혼밥`은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 좌충우돌(左衝右突) 하면서 지탱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2003년 `카드대란`과 2008년 `세계금융위기` 같은 대형사건 등으로 `혼밥족`이 꾸준히 늘어났다고 한다.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분열됐고, 핵가족마저 기러기 아빠로 표현되는 1인 가족으로 해체됐다. 이런 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인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나 홀로 저녁을 먹는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인들이 소외와 고독에 내던져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50대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라면이나 햇반 같은 간편식을 더 많이 구입하는 실정이라 한다. 밥을 챙겨주지 않는 50대 이상 여성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풍속도라 하니 적잖게 씁쓸하다.

가정에서 가장(家長)이 차지했던 사회-경제적 지위가 위축되면서 기러기 아빠와 `혼밥족` 증가가 일어난 것이다. `혼밥`을 먹고 또 먹다가 어느 날 문득 죽어버리는 기러기 아빠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세상 아닌가?! 20년 넘도록 불철주야(不撤晝夜) 헌신했던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끼니조차 대접받지 못하는 50대라니?! 그들이 사회 변두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어느 허름한 국밥집에서 소주 한잔 털어 넣는 장면은 얼마나 우울한가?!

며칠 전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려 했다. 기대했던 `돈까스`를 제공하는 학생식당은 문을 닫았다. 교직원식당은 살 빼는 사람에겐 최적의 장소지만, 여유롭게 저녁을 맛보려는 사람에겐 정말 아닌 곳이다. 거기서부터 나의 뜻하지 않은 저녁산책이 시작됐다. 일단 목표한 돈까스를 찾아 나서자, 하고 길을 떠난 것이 화근(禍根)이었다. 여기저기 떼로 몰려 왕성하게 저작운동(詛嚼運動) 하는 젊은 축들 사이에서 `혼밥` 하려니 오금이 저리는 것이다.

이 거리 저 거리 찾아 헤매다 신호를 건너고 갔던 길을 되짚고 하면서 결국 낡은 돼지국밥집을 들어서는 자화상(自畵像)을 본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따로국밥`을 시켜놓고 허공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게 허전했다. 우연처럼 맞닥뜨린 `혼밥`이었지만,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음이다. 아직도 나는 `혼밥`에 익숙해지지도 않았고, 어쩌면 `홀로`란 사실을 심정적으로 인정하지도 못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백년 넘도록 그런 반성도 없이 살아왔다니!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1인분으로 포장된 식재료가 흔하다. 오래 전부터 1인가구가 등장했고, 그것이 주도적인 가구형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인가구나 `혼밥족`이 비주류인 데다가 다품종 소량판매가 여전히 홀대(忽待)받는 현실이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혼자서 밥 먹는 사람들은 도처에 수두룩하다. 3포를 거쳐 5포를 지나 7포를 넘어 엔포에 이른 청년세대도 우리 주변에는 차고 넘친다. `혼밥`과 `혼밥족`은 엄연(奄然)한 현실이다.

`혼밥`과 `혼밥족`이 늘어가는 것이 당연한 시대적 추이(推移)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족과 중년남성을 버리는 짓거리다. 그런 50대가 더 나이 먹고 건강을 잃어버려 이른바 `환부(鰥夫)`가 되면 그 결과가 어떨지 명약관화(明若觀火) 하기 때문이다. 상실되는 가족관계와 먹을거리의 건강한 복원이 시급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건강한 개인이 건강한 가족을 만들고, 건강한 가족이야말로 강건한 국민의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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