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상이 차고 넘친다. 가요대상과 방송대상은 물론, 영화제(映畵祭)도 각종 상을 마련한다. 청중의 시선은 언제나 맨 마지막에 호명되는 사람에게 집중된다. 시상식에 참가한 사람들도 주목을 끌지만 대상 수상자가 누구냐가 최고 관심거리다. 그러다보니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은 아예 존재감조차 없는 경우도 적잖다. 한국인의 금메달 사랑이야 자타가 공인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나라!”같은 말이 생겨났을까!
1등만 인정하는 풍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군가 1등을 하면 누군가는 2등이나 3등 혹은 꼴찌를 해야 한다. 금메달은 은메달과 동메달 그리고 등외(等外)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오로지 1등만 보며 달려왔다. 우리 머릿속에 장착(裝着)된 동양최대의 국회의사당과 세계최초의 금속활자가 그것을 증명한다. 어디 그뿐이랴! 최연소, 전국1위, 수석입학과 수석졸업 같은 어휘들이 여전히 난무(舞)한다.
언제나 1등을 지향하는 우리는 크지도 않은 나라를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눠서 사유한다. 서울과 그 인근(隣近) 경기도를 이른바 `수도권`이라 하고, 여타 지역을 `지방`이라 부른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일기예보 할 때마다 들려오는 시작 장타령(場打令)이다. 내 남 할 것 없이 모든 방송사 일기예보는 빼다 박은 것처럼 똑같다. 서울에서 시작하여 서울에서 끝난다. “현재 서울은 몇 도입니다”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토록 획일적(劃一的)으로 국토를 분할하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지구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 일기예보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하여 페테르부르크로 끝나거나, 그 반대다. 중국이나 미국, 일본도 북경이나 워싱턴, 동경에서 일기예보를 시작해서 끝내는 법이 없다. 동쪽이나 서쪽, 남부나 북부에서 시작하고 끝맺는다. 그런데 대구경북 일기예보도 마찬가지다. 대구에서 시작해 대구로 끝난다. 미워하면서 닮아가는 것이다. 크고 강한 것, 빠르고 힘센 것, 권력과 부(富)를 가진 것에 대한 가없는 동경(憧憬)이 만들어낸 기형적(畸形的)인 풍경이다. 1등과 일류와 특권의식이 중앙지향의 인식과 사유와 맞물리면서 대대손손(代代孫孫) 연면부절 (連綿不絶)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시선을 우리 몸으로 돌려보시라. 인간의 육신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머리인가 심장인가, 내장(內臟)인가, 팔다리인가?! 인체에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잠시 생각해보시라.
대한민국 영토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크고 힘 있다고 해서 소중하고, 작고 약하다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적용(適用)하면 꼴찌는 꼴찌대로 의미 있으며, 그가 있음으로 1등이나 2등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대상(大賞)을 받은 자에게만 눈길을 돌릴 것이 아니라, 그를 가능하게 한 숱한 무명(無名)의 별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돌려야 마땅하리라 믿는다.
나의 명제는 여기서 발원한다. “단역 없이 조연 없고, 조연 없이 주역 없다!” 주역은 근본적으로 허다한 단역, 즉 엑스트라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주역만 하려하고, 모두가 1등이나 일류만 고집하고, 모두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만 행세하려 하면 세상은 망한다. 지역과 민초들이 강건해야 국가와 국민 모두가 강녕할 수 있는 법이다. 한 그루 낙락장송(落長松)을 키워내는 근본에는 헤아릴 수 없는 군영(群英)과 초목이 자리한다.
병신년(丙申年) 새해에 심호흡하면서 높푸른 하늘과 시퍼런 바다를 바라보며 기억하자. 5천만 대한민국의 주인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나, 대구를 비롯한 경북만이 아니라는 것을! 너와 내가 동등(同等)하고 가치 있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풍토를 만들어나가야 할 때라는 사실을!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주역도, 단역도 때로는 조연도 유쾌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보다 조화롭고 화사(華奢)하며 평안한 신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