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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해야 할 `혼돈의 정치`

등록일 2015-12-30 02:01 게재일 2015-12-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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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형<br /><br />정치선임기자(국장)
▲ 이창형 정치선임기자(국장)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교수들이 뽑은 올해 사자성어 `혼용무도(昏庸無道)`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나는 친이도 친박도 아니지만 우리가 뽑은 대통령은 임기 동안 존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여성대통령이 안쓰럽기까지 하다”고 했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 때문에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혼용무도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워졌다`는 뜻으로 읽힌다. 옛날 같으면 국가원수 모독죄에 해당할 수 있는 섬뜩한 표현이다.

하지만 한국의 2015년을 되돌아본다면 이 글귀에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기도 하지만 국민들로서는 속이 시원할 수도 있다.

홍준표 지사가 `안쓰러운 여성대통령`이라고 편을 들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내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진박(眞朴, `진실한 사람+친박`의 줄임말) 인사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도를 넘고 있고 박 대통령 또한 이같은 편가르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다시 `진실한 사람`에 대해 언급했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된 사람이란 말이 있다”면서 “무엇을 취하고 얻기 위해 마음을 바꾸지 말고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라고 `진실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배신의 정치`를 언급한 이후 나온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을 놓고 이른바 박심을 등에 업은 총선 입후보예정자들은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날개를 단 격으로 행동하고 있다.

현수막에 박 대통령과 함께 한 사진은 필수이고, 박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해 홍보물과 연설문을 만들고 있다.

출마의사를 밝힌 지역에서의 지지율이 저조하고, 상대후보의 높은 장벽을 뚫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여기저기 지역구를 기웃거리는 부류들도 한둘이 아니다. 대통령만 팔면 공천을 받고 당선될 것이란 오만이 가득차 있다.

대구·경북에 `카스트제`가 상륙했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진박(眞朴)-중박(中朴)-망박(望朴)-비박(非朴). 브라만(사제)-크샤트리아(군인)-바이샤(농민ㆍ상인)-수드라(노예)로 구성된 인도의 신분제 카스트 제도와 닮았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의 돌직구 발언을 무조건 비판할 생각은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7일 국회 연설에서 `가슴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며 경제 안건 처리를 호소했었다. 2주 뒤 국무회의에서는 발언 수위를 `호소`에서 `심판` 수준으로 높였다. 경제·민생 안건의 국회 표류를 비판하면서 “국민을 위해서 진실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꼴찌 성적표를 받은 19대 국회의 행태를 보면 대통령의 충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은 시점·형식·내용의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것이 여야 공통의 시각이다.

국무회의에서 출마할 장관들을 앉혀 놓고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모양새를 옳다고만 할 수 있을 것인가. 국정 비효율의 책임은 국회의원 겸직 장관들에게도 있다. 게다가 공기업 등의 기관장들도 너도나도 출마하겠다며 사퇴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만 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박심을 업은 `진실된 사람`인 양 포장되고 있다.

정치권도 더 이상 청와대발 과격발언의 표적이 될 빌미를 제공해선 안된다.

총선 선거구 획정을 위한 여야 지도부 간 협상은 결국 31일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주요 쟁점 법안들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송구영신 해야 할 이 시기에 우리의 정치권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못해 따갑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경북은 더 이상 중앙위주의 정치놀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을 무시하고 정치놀음·권력놀음에 빠진 사람들이 설치고 있는, 그런 놀음의 마당을 더 이상 제공해선 안될 것이다.

대통령과 정권에 용비어천가를 부르면 만사형통하는 시대를 종식해야 한다. 내년 총선은 그런 시대적 소명을 위한 심판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혼용무도의 `혼돈`을 청산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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