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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5-12-11 02:01 게재일 2015-12-1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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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성석제 한겨레출판 펴냄, 324쪽

“상주에서 태어나 머물렀던 시간은 15년도 되지 않지만 내가 쓴 소설의 절반 가까이가 상주를 무대로 상정한 것들이다. 자연, 마을, 사람, 사물, 관계마다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내 관심사의 가장 앞쪽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거기에는 삼라만상 중에 사람이 귀하고 높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상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석제 에세이 `고향의 황홀한 맛`중에서)

소설가이자 산문작가인 성석제가 일곱 번째 산문집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한겨레출판)를 들고 돌아왔다.

산문으로는 2011년 `칼과 황홀`이 나온 뒤 4년 만이다. “글쓰기는 살았던 시간을 남기는 방법이다.” 작가의 말처럼 누에를 키워 실을 잣던 고향 집의 어린 시절 풍경부터 이십 대 대학 시절 어쩌면 작가로서의 길을 들어서는 중요한 사건이 됐을 기형도 시인과의 에피소드, 세상의 끝처럼 아무런 꾸밈없고 가차없고 무정한 느낌이 들었던 남반구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계곡에서의 느낌까지 자신의 존재를 이뤘던 특별한 시간들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전작 `칼과 황홀`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의 음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남다르다. 이번 산문에서도 음식에 얽힌 소재가 적지 않다. 서울 출신 사람들만 알음알음으로 살며시 다닌다는 음식점들, 천국의 다른 이름이라고 부를 정도인 단골집, 음식점 이름에 왜 어머니 할머니 등 여성의 이름을 많이 쓰는지에 대한 고찰, 바닷가 모래알처럼 원조가 많은 시절 진짜 원조의 맛의 비밀은 무엇인지, 그리고 고향의 황홀한 맛까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작가만의 음식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다.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는 `성석제의 사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한겨레 ESC`에 연재한 글과 작가가 틈틈이 써놓았던 에세이들을 한 데 묶어 보강했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공지영 지음)에 그림으로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독특한 화풍을 선보인 적이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이민혜씨의 그림으로 책의 깊이와 재미를 더했다.

1부 `세상에 이런 맛이`, 2부 `오 육체는 기뻐라`, 에필로그 `죽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44편의 에세이가 담아져 있다.

작가는 고향인 상주에 머물렀던 시간이 15년밖에 안 되지만 소설의 절반 가까이 상주를 무대로 한다고 말한다.

이번 산문에서도 고향을 소재로 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고향의 황홀한 맛이라고 표현한 골곰짠지 찬사,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에서 떠올리는 아련한 어린 시절의 한때, 고단했으나 신비로웠던 고향의 누에치기 풍경, 오디 이야기는 물론이고 저 멀리 우즈베키스탄에 가서도 길가의 뽕나무에서 오디를 홀린 듯 따 먹다가도 고향의 검은 오디를 떠올리는 식이다.

경북 상주의 시간과 공간, 청춘 시절, 아메리카의 미국 캐나다 칠레,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라오스와 터키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작가의 마음을 예민하게 끌었던 사람, 사건, 그리고 풍경들 속을 함께 걷다가 맛도 보고 슬며시 웃음 짓기도 하며 생에 대한 약간의 위로와 내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를 통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을 그리겠다고.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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