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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에 담은 풍경·주변 사람이야기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5-11-13 02:01 게재일 2015-11-1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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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박성우 창비 펴냄, 272쪽
`거미``가뜬한 잠``자두나무 정류장` 등의 시집으로 한국 서정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박성우 시인은 삶이 묻어나는 따뜻하고 진솔한 시편들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불모지나 다름없던 `청소년시`에 눈 돌려 청소년들을 만나 고민과 갈등을 함께 나눴고, 그 결실로 첫번째 청소년시집 `난 빨강`을 선보인 바 있다.

박성우 시의 바탕에는 이렇듯 직접 만나고 교감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소박한 삶이 깃들어 있다.

이번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창비)에서도 시인은 삶에 힘이 돼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풍경을 오롯이 기록해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각별한 마음을 보낸다.

엽서에는 작업실이 있는 전북 정읍시 산내면 수침동(종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인은 순박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일궈 살아가는지, 그 안에 쿡쿡 웃음이 나고 가슴이 저릿한 사연들이 얼마나 많고 또 소중한지를 과장되지 않은 진솔한 언어들로 꾹꾹 눌러 썼다.

그사이 시인은 대학교수 일을 스스로 그만두고 더 열심히 동네 마실을 다니며 아랫녘의 아름다운 사계와 숨어 있는 들꽃, 사람들의 꾸밈없는 표정과 주름진 할매들의 손길을 소중하게 담아냈다.

백중날 같이 일하고 같이 모시개떡을 쪄 먹고 같이 쉬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화투판에서 팔천원을 잃고 울었던 블루베리 농사꾼 갑선이, 한때 넓은 집에서 편히 살았지만 지금은 `냉장고 없이` 살아도 불편함이 없는 온겸이네, 서울처녀 김유리 과장을 듬직한 `굳은살 박인 손`으로 꼬신 지고지순한 시골총각 순기 형님, 오락실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바로 살림을 차린 승용이, 전교생이 다섯명 중에 `거의` 일등만 한다는 똑똑한 열살 소년 가윤이, 동네 벚꽃 구경하러 왔다가 삼개월 만에 결혼한 성준이네 부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마을에서 `세월호 자전거`를 모는 팽나무집 진섭이 형님, 상례마을 할매 집 수리를 위해 대설 아침에 다 같이 모인 산내면 청년들, 시인의 `엄니` `큰어매` `딸애`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먹먹해지다가도 시인이 직접 찍은 물기를 머금은 풀잎들, 꽃이 흐드러지고 눈이 덮인 사계절 풍경을 바라볼 때면 답답한 방 안에서 창문을 활짝 연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박성우 시인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야말로 `나답게` 살아가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눈여겨보면서 “번지르르한 겉보다는 늘어가는 굳은살로 세상 사는 이치를 알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새삼 크고 귀하고 소중하다”(12면)고 말한다.

시인이 귀 기울인 수침동 마을과 이웃 동네 사람들의 이 구구한 사연들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바탕이고, 앞으로의 우리를 `우리답게` 살아가게 할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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