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 2일 고려 왕궁터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북한 개성 만월대(滿月臺)를 방문했다.
방북단은 궁궐터와 유물을 직접 관람한 후 공동 유물 발굴을 통해 남북한이 역사 인식에 대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특히 만월대 복원 현장은 통일 이후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 우리 정치권이 고구려 고분 발굴과 DMZ 내 궁예 도성 발굴 사업 등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만월대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개성 송악산 기슭에 건설한 궁궐의 터를 의미한다. 이 궁궐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족의 침입으로 소실됐고 지금은 궁궐이 있었던 터만 남아 있다.
2007년 남북 역사학자들이 함께 유물 발굴을 시작했다. 2011년 발굴조사가 중단됐으나, 문화통로 개설을 통해 민족동질성을 회복한다는 정부 입장에 따라 작년에 발굴조사가 재개되고, 최근 서울과 개성에서 `개성 만월대 유물 특별전`이 개최됐다.
만월대 공동발굴과 전시회 개최는 △남북간 `문화의 통로`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점 △남북관계에서 민관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준 점 △남북간 실천 가능한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았다는 점 등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만월대를 매개로 한 남북간 교류가 본격화하면서 신라 천년 왕궁터 월성(月城·반월성)의 복원사업도 남북 역사학자들로서는 큰 주목거리다. 월성은 13세기 중반, 잇단 몽고 침입 때 불에 탔다. 아시아를 제패할 염원으로 지은 동양 최대의 가람 황룡사도 이 시기 잿더미가 됐다. 고려는 불탄 신라 국보들을 끝내 복원하지 못했다.
월성과 만월대는 왕이 상시 거주하는 정궁(正宮)이고, 건축기법도 같다. `첨성대`가 잘 보존돼 있다는 점도 같다. 왕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천문을 잘 관측해서 농사를 지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월성 복원 프로젝트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라왕경 복원정비`사업이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확정되면서 2025년까지 총 사업비 9천450억원이 투입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경주를 전격 방문, 복원현장을 둘러봤다.
남과 북의 찬란했던 문화유산들이 속속 옛모습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보이는 것은 현재로선 분단상태지만 그 역사성에서는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이 녹아 있는 것이다. 신냉전 시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동북아 정세를 감안한다면 남북간 교류와 협력은 한반도 전체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일 정상회담을 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적 실망감이 크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에서 예상시간을 넘겨가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가능한 조기에 위안부 문제 해결 협의를 가속화 하기로 합의했다”고만 전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강조해 온 아베 총리의 `진정성 있는 사과·조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회담 이전, 여야 정치권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 입장에 대한 우리정부의 단호한 원칙, 일본 국회를 통과한 신안보법 등 일본의 군사적 팽창정책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입장 등을 요구했다.
한일 정상회담이 한일관계의 성숙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공존과 평화를 위해 전진하는 회담이 되기를 바라는 국민적 염원이었다. 미일중 3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외교전을 펼 수 밖에 없는 현 국제질서하에 있는 한국이지만 주변국의 잘못된 역사인식 등에 대해서까지 입을 다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적 정서다.
그런 의미에서 경주 월성과 개성의 만월대가 긴 잠을 깨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단순한 남북간 교류의 문제를 뛰어넘는 역사의 문제다.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가 어떤 위치를 점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하는 절체절명 역사인식의 선상에서 출발해야 할 민족적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