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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火의 의미

등록일 2015-10-21 02:01 게재일 2015-10-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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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화<br /><br />대구경북부 부장
▲ 정철화 대구경북부 부장

매년 이맘때면 국내 스포츠를 결산하는 전국체육대회가 열린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소속 엘리트 선수들이 참가해 스포츠 전종목에서 고장의 명예를 걸고 실력을 겨룬다. 올해 제96회 전국체전은 강원도 강릉시에서 지난 16일 개막해 7일간의 열전을 펼친 뒤 22일 폐막한다.

전국체전을 여는 주된 이유는 엘리트 체육인 발굴과 육성을 통한 국내 스포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언뜻 스포츠인들의 잔치로 보이지만 체전기간 주경기장을 밝히는 성화(聖火)에 더 큰 체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성화는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의 신전에서 채화해 올림픽경기가 개최되는 주경기장의 성화대에 점화한 뒤 대회가 끝날 때까지 타오르게 하는 불이다.

불은 고대 인류 문명이 급속한 발전을 가져온 시발점이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시되어 왔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조상 대대로 불씨를 전승했고 집안에서 분가해 이사를 할 때 본가의 불씨를 나눠 들고 맨 먼저 새집에 발을 디디도록 했다. 불씨는 혈통을 따라 전승돼 내려옴으로써 혈연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조상 전래의 불씨는 조왕신이라 하여 그 집안사람의 선악을 감시하고 불화와 갈등, 반목을 다스리도록 했다고 전한다.

불의 기능은 고대 희랍이나 로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 보면 고대 아테네의 중심부에는 제단을 쌓고 거기에 성화를 연중 태워두었으며 시민들이 그 불을 분화해 생활을 영위하도록 했다. 로마에서는 베스터 신전에서 정초에 불을 일으켜 로마 시의 복판에 있는 제단에 성화를 세워놓고 시민들이 분화해 사용하도록 했다. 불은 고대 도시국가라는 공동체를 영위하는 구심점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화가 혈연공동체의 결속을 위해 소규모로 쓰였다면 희랍이나 로마에서는 국가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대규모로 쓰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근원의 이치는 다를 게 없다.

이러한 신성한 불의 의미를 올림픽에 옮겨 놓은 것이 성화이다. 희랍 도시국가들 간의 오랜 반목과 갈등을 없애고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올림픽의 출발이다. 아테네 올림푸스 신전에서 채화한 성화를 경기장에 타오르게 해 올림픽의 정신을 상기하도록 했다. 공동체의 결속 범위를 국가단위에서 국제단위로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성화대가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는 1955년 제36회 전국체육대회 때부터 성화를 사용했다. 올림픽이 올림푸스 신전에서 채화를 한다면 우리나라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를 한다. 채화지가 모두 신성한 영역으로 성화의 고결성과 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채화된 성화는 대회가 열리기 전 세계 또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릴레이 봉송을 하며 성화가 지닌 참된 의미를 알리는 의식을 치른다. 성화는 상호 이해와 협력, 사회적 갈등 해소, 신성한 또한 공정한 경쟁, 평화와 공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 지방정부와 의회, 노사, 조직 상하, 부부, 고부간, 세대간 등 다양한 갈등 구조가 존재한다.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최고 정점에 정치가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허구한 날 정파간, 계파간 싸움만 하고 있다. 사회의 이해조정자들이 아니라 자기네들끼리 편을 갈라 서로 치고받으며 오히려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그만큼 국민들은 불행해 질 것이다.

7일동안 강릉종합운동장을 밝혔던 전국체전의 성화는 22일 폐막식과 함께 꺼진다. 체전의 성화를 끄지 말고 정치권에 계속 불타오르게 하면 어떨지. 성화를 보며 잠시만이라도 그 뜻을 헤아리고 대결이 아닌 화합과 번영의 각오를 되새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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