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모종컵 속에 나를 심는다 아가야, 어서어서 피어라 너를 팔아 새 눈알을 사야지 그 때서야 내 너를 볼 수 있지 나는 빛나는 아버지를 쬔다 일렬로 줄을 선 모종컵 속으로 골고루 아버지가 비친다 아버지는 사흘만에 핀 떡잎을 보고 주문을 왼다 너를 팔아 새 다리를 사야지 그때서야 내 너를 업어주지 아가야, 어서어서 피어라 아버지의 얼굴에 무수한 길이 난다 아버지, 나는 어디서 나를 사나요 분무기에서 수천의 아버지가 쏟아진다 몰라, 몰라 이 길을 다 지워야겠어 내가 온 길을 되돌아가야겠어 나는 찢어지는 아버지를 받아 마신다 나는 쑥쑥 찢어진다 아버지가 환해진다 모종컵 속에서 아버지의 사지가 하나씩 피어난다
거울을 매체로 사회를 움직이는 질서 혹은 명령과 체제의 강압성과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는 당연히 사회적 질서 혹은 명령이나 체제를 의미한다. 나는 아버지에 의해 제압되기도 하고 재배되는 존재다. 나를 피우기 위해 아버지가 찢어지고 아버지를 피우기 위해 내가 찢어지는 순환구조를 통해 자기분열, 소외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우리를 지배하는 질서 명령 체제가 우리를 가두고 억압하고 있다는 독특한 시인의 인식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