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광복절이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일본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지만, 역사 이래 우리 민족에게 가장 많은 아픔을 안겨준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 생활속 곳곳에 일본이 남긴 상처의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기읍성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만들어졌고 신라 문무대왕은 죽어서라도 왜구의 침입을 막는 해룡이 되겠다며 동해 가운데에 수중릉에 수장되기까지 했다. 왜구의 침입과 약탈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본이 한국에 끼친 해악은 고대로부터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을 거쳐 현재 독도영유권 분쟁으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근대사의 한일합방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생생한 현장으로 남아 있다. 동해안의 최대 어업항인 구룡포에 가면 `근대문화역사거리`를 만날 수 있다. 구룡포항을 끼고 나 있는 도로 안쪽 좁은 골목에 일본식 전통 가옥이 줄지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이주해 집단 거주지를 형성한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1932년에는 300가구에 달했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규모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은 쫓겨나듯 구룡포를 떠났고, 500m 남짓 되는 골목에 80여채의 일본식 가옥을 남겼다.
이곳에 이주한 일본인들은 어업과 선박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의 경제활동을 하면서 동해안의 풍부한 수산자원을 약탈해간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어획물은 물론이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각종 어구어법을 실험, 개발했다. 한국어민사에 보면 일본인들이 구룡포앞바다에서 동양 최초로 건착망 시험조업에 성공했다고 기록돼 있다. 건착망은 2척의 배가 긴 그물로 고기떼를 둘러싸서 잡는 어법으로 주로 회유성 어종인 정어리, 전갱이, 고등어 등을 잡는데 사용한다. 당시 이 어법으로 동해안의 정어리떼를 마구잡이로 남획, 정어리 기름을 짜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구룡포 어민들은 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전국 각지에 지어졌던 일본 가옥들은 해방 이후 반일감정이 극도에 달하며 대부분 철거돼 없어졌지만,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일본가옥들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었다. 포항시는 2010년 3월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조성사업`을 시작해 100여년전의 일본인들이 살았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아마 전국에서 일본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역사 체험공간이 아닐까 싶다.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생각하면 대한민국내`왜색거리`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아보인다. 보는 이에 따라 일제의 치욕을 떠올리게 하는 부끄럽고 청산해야 할 역사의 현장일 수도 있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제의 잔재를 철거해 민족의 정기를 회복하겠다”며 일제 식민통치의 본거지였던 조선총독부건물을 철거했다. 이 결정은 한국 현대사의 영욕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역사의 현장과 기록이 일제의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일본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공격을 받고 패망했다. 원폭의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영원히 기억에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의 역사이지만, 그들은 그 끔직한 현장을 보존하고 기념관과 평화공원까지 만들어 기억하고 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다. 포항시는 과거의 아픈 역사도 보존해 미래 세대를 위한 교훈의 장소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로 일본인 거리 복원을 성사시켰다. 일제 침탈의 현장을 몸소 느끼며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구룡포 근대문화역사 거리에 들러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상냥함속에 숨겨진 일본의 본래 모습을 느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