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광 규
시간의 단두대 앞에서
고개 떨구지 않는 자 없다
서리가 한 번 치니
푸른 잎들 다 내린다
내일 바람 불면
남아 있을 잎 없겠다
동지들 다 가고 없는데
오는 겨울 어떻게 맞을 것인가
다시 길을 묻는 수밖에
질문을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져
엄혹한 현실의 매질 앞
사소한 것에 화내거나 목숨 걸지 않고
내 안의 나약함과 부도덕을 먼저 때려죽이며
부드럽게 견디는 수밖에
시대를 뜨겁게 살아온 시인의 현실인식이 강하게 나타나있다. 90년대적 정신사의 황량함 속에서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을 본다. 동지들은 다 흩어져버리고 다시 시린 겨울이 다가오고 엄혹한 현실의 매질은 이어지는데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나타나있다. 고민과 고뇌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서운 현실을 견디겠다는 강한 의지가 시 전편에 묻어나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