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재 종
산국은 꽃 점점의 형광으로 제 길을 밝히고
은사시나무는 우듬지를 흔들어 길을 드높인다
동박새는 또 목청을 가다듬어 제 길을 노래하고
삵쾡이는 튀는 발이 날래어 없는 길도 뚫는다
시방 물들고 시드는 숲에서도 길은 닫히지 않는다
추풍 치고 잎 덮이고 그 밑에선 땅강아지가 길을 판다
시방 이 숲에서 숨 타지 않은 길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길도 보이지 않는 길도 썩 깊고 아득할 뿐!
이 시에서의 길은 사람 뿐만 아니라 나무나 새, 강아지풀 같은 자연물이 함께가는 생존과 생명의 길이다. 현대의 메카니즘을 비판하면서 다분히 문명비판적인 시적 경향을 보이는 시인들이 많은데 시인 고재종은 자연과 인간, 우주가 함께 가는 공생적 길을 제시하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