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희 성
나는 불을 지펴야 한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목숨 바친 친구 머리맡에
불을 지펴야 한다
무덤이 그 영혼을 어떻게 가두었는지
내 눈으로 보리라
얼음 위에 불을 피우고
얼어붙은 그이 피가
내 몸 속에 어떻게 타오르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어째서 그의 혼이 밤마다
언 땅 속에서 탈출하며
죽음과 삶이 어떤 형식으로
만날 수 있는가를
평생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치열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민주화운동에 비켜서지 않았던 시인의 시대인식이 깊이 배어나는 시다. 독재시대를 건너며 목숨 바쳐 싸워온 사람들의 그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으려는 다짐과 함께 아직도 세상의 곳곳에 혼재해 있는 불구와 불균형의 사회적 모순을 향해 의연하게 대결하겠다는 강단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