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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아직 침몰 중

등록일 2015-04-15 02:01 게재일 2015-04-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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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모든 것이 분주한 봄이다. 시작하려는 이들의 분주함이 봄 들판을 가득 매웠다. 봄은 시작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시작을 위해서는 구태(舊態)의 껍데기를 깨거나, 묵은 것들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시작은 없다고 봄 들판이 말해준다.

상춘객들 옆으로 봄갈이에 한창인 어느 할아버지의 무상무념의 표정에서 필자는 시작하는 방법과 봄의 의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필부에 지나지 않는 필자는 답을 찾지 못했다.

꽃 잔치에 이어 새싹들이 겨울을 뚫고 대지마다, 가지마다 푸른 눈을 떴다. 눈을 뜬다는 것은 나아갈 방향을 안다는 것이다. 새싹들은 꽃 잔치에 이어 곧 있을 신록의 물결을 위해 한눈을 팔지 않고 열심히 자연과 소통하고 있다. 그 소통의 결과는 넘실거리는 신록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안다.

자연은 소통이라는 방법을 통해 계절을 순환시키고 있지만, 소통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로지 일방통행만 하고 있다. 일방통행의 결과는 단절이고, 단절은 불신을, 불신은 무한 이기주의를 양산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기주의의 참혹한 결말을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에 똑똑히 보았다. 한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295명의 고귀한 생명을 우리는 너무도 아프게 기억한다.

두통 섞인 출근길에 한껏 물오른 가로수를 보았다. 잠시나마 새싹의 싱그러움을 느끼려고 할 참에 필자는 필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노란 현수막을 보았다.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습니다.” 이 말이 왜 필자에겐 너무도 이기적으로 보였을까. 소통 중인 자연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아, 또 불법적으로 매단 광고라는 느낌에 필자는 금방 눈과 마음을 거두어 버렸다.

그리고 재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마치 세상이 다 무너질 것만 같았던 2014년 4월! 하지만 그 이후 우리는 어떠했는가. 불과 반년도 안 되어 우리의 관심은 세월호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물론 모든 국민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드러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묵묵히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만약 내세(世)가 있다면 그곳에서만이라도 춥지 않게, 또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국민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다양한 이유로 그때의 아픔을 잠시 잊었고 살았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학교 정문들에는 추모 현수막이 내걸렸고, 많은 단체들은 이번 한 주를 추모 기간으로 정해 운영하고 있다. 추모 행사들의 공통점은 “잊지 않겠다!”이다. 정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세월호 추모 기사를 검색하다 2014년 7월의 한 기사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세월호 1주년에 맞춰 나온다는 기사였다. 영화 제목은 `거위의 꿈` 영화제작 추진위 공동대표인 조계종 법안 스님의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 탐욕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자화상이며, 어린 영혼들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죽음이 이 시대 어둠을 비추는 등불로 남을 수 있도록 영화를 제작 하겠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많은 공감을 했다. 그러다 문득 `과연 어떤 내용을 다룰지` 궁금해졌다.

스님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해주었다.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답답할까. 필자는 어느 단체 회원들이 광화문을 배경으로 든 현수막이 계속 생각난다. `정권 퇴진` 과연 세월호 희생자들이 바라는 것이 이것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이해서, 또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우리사회가 재난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4월이 더 이상 침몰하지 않도록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정부의 약속이 꼭 지켜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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