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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에로티시즘(eroticism)`의 표현

등록일 2015-04-10 02:01 게재일 2015-04-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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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며칠 전 시내 볼일이 있어 나갔다. 시내 한가운데 젊은 연인들의 능청스런 애정행각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적이 있었다. 필자가 지나치게 보수적인지 아니면 요즘의 젊은 신세대의 빠른 풍속도 변화를 못 따라가는지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있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다채로운 표현의 자유와 함께 성(性)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근대화와 경제개발이 본격화 된 이후 50여년이라는 짧은 변화 속에서 사랑과 연애 등 `에로티시즘`에 대한 사고는 이미 서구화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표현은 이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럼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주변사람들이나 연세가 드신 분들로 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는 모습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리스어 에로스(eros)에서 유래된 `에로티시즘(eroticism)`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연애, 사랑의 신을 의미하는 단어로 예술적 가치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그리고 성행위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와는 구별되어진다. 이러한 시각 차이로 인해 인간의 기본 욕구인 성(性)을 자극하는 에로티시즘을 이용하는 것도 현대인들의 소비적 시각 문화 속에서 새로운 `예술과 외설`에 대한 논쟁이 비롯되고 있는지 모른다.

20세기 오스트리아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1890~1918)는 성(性)과 죽음에서 그 진실을 작품으로 표현하여 구원에 이르고자 했던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던 시기의 유럽 미술계는 큰 변혁기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이 시기에는 독일의 표현주의와 비엔나 분리파, 야수파, 다다, 초현실주의 등의 예술운동이 활발히 진행됐으며 사회적으로 산업혁명의 부정적 부산물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향락과 소비문화의 온상이 되기 시작한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도시인들은 극히 원초적인 향락문화에 빠져들면서 거리에는 창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극히 사회적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화가가 에곤 쉴레이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에로티시즘을 작품의 모티브로 이러한 환경을 활용하게 됐으며 특히 남성적이며 힘차고 억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성욕의 표현을 자유롭게 구사했다. 정신분석학이 태동했던 비엔날레가 그의 주요 작품 무대였던 환경 속에서 성(性)과 자아에 대한 도취는 새로운 정신분석학과 연관을 맺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포옹>은 노란 담요 위 구겨진 흰 시트에는 한 쌍의 연인이 팔을 감은 채 엉켜 있으며 여자의 머리는 베개 너머로 흩어져 있고, 얼굴을 돌리고 있는 자세에서는 서로의 얼굴이 겹쳐질 정도로 밀도감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림이다. 쉴레 특유의 성(性)에 대한 비틀린 사고에서 벗어나 작가 내면의 부드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작품은 결혼생활에 대한 쉴레의 만족감을 그림으로 반영해 주는 요소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대전 후 유럽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임신 6개월 된 아내 에디스가 사망하자 쉴레도 3일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때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스스로의 내면세계와 본성을 여지없이 과감하게 드러낸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근원에 자리하는 성(性)을 죽음과 융화시켜 표현함으로써 그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와 찬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진정한 에로티시즘의 표현은 어떠한 모습인지 그의 작품<포옹>을 보며 반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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