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교육이 미래를 위한 투자인 만큼 교육의 설계 역시 다가올 미래 사회가 어떤 인재를 요구할지를 예측해 이뤄져야 하는데, 미래 사회를 위한 교육의 방향 중 하나가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는 인재 육성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유능한 인재 만들기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개인의 똑똑함은 그 개인이 속한 사회가 번영을 누리는지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유능한 정치인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사실관계를 왜곡할 수도 있고 똑똑한 기업인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 소비자들을 교묘히 속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개인의 재능을 입신양명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거나 나홀로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앞으로 다가올 사회는 이념, 종교, 문화, 인종, 사회계층 간의 격차가 더욱 심화될 여지가 있으므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사회 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요구될 것이다.
이 때문에 IQ와 같은 지능보다 새로운 지성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교육학자 Burbules는 새로운 지성으로 일리성(reasonableness, 그럴 수 있음을 아는 것)을 제안했다. 일리성은, 특정 행동이나 의사결정이 `그 상황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일리성은 내가 가진 잣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계산문제를 잘 푸는 인재도 필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뇌의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관계에서의 지능을 개발할 필요가 생겼다.
세상의 많은 갈등 중 일부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똑똑한 기업가가 이득을 취하기 전에 피해를 볼 소비자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유능한 정치인이 개인의 승리보다 시민을 위해 사회정의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일리성을 갖추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책 한 권을 읽어 무엇인가 배운 것 같고 스스로 똑똑하다 생각할수록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내가 똑똑하다면 나보다 똑똑하지 못한 타인의 생각을 들어보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리성은,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가치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지적 겸손이 전제될 때 길러질 수 있는 능력이다. 또한 일리성은, 논리적인 사고 기술에다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더해졌을 때 길러질 수 있는 능력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일리성을 갖추기 위해, 경쟁구조의 환경 속에서 홀로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보다 협력학습을 통해 문제해결을 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혼자서 수행한 과제 수준보다 누군가와 힘을 합쳐 수행한 과제 수준이 훨씬 좋았을 때,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리성 개발을 위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세상의 다양한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 정치에서 좌·우파가 추구하는 가치가 어떻게 다른지, 언론이나 대중매체가 사회경제적 강자의 입장을 어떻게 대변하고 있으며 약자의 입장이나 생각을 어떻게 배제하거나 왜곡하고 있는지 등 세상을 읽는 다양한 방법을 아는 것은 세상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이나 의사결정이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일리성은,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공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가운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무조건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애나 정의 등 보편타당한 진리 내에서 특정 행동과 의사결정이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또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