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꽃 잔치로 떠들썩하다. 산수유, 매화, 유채, 벚꽃의 공통점은 지역 봄 축제의 주인공들이라는 것이다. 산수유는 전남 구례, 매화는 광양, 유채는 부산, 벚꽃은 진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문득 몇 해 전 여섯 살 나경이와의 대화가 기억난다.“나경아, 봄은 왜 봄일까?” “아빠, 봄은 볼 것이 많아서 봄이야.” 필자의 무지를 깨뜨려주었던 여섯 살 나경이의 봄에 대한 정의가 딱 맞아 떨어지는 요즘이다.
전국이 볼 것으로 넘쳐나는 4월. 그래서인지 주말 뉴스에는 전국 주요 도로를 가득 매운 상춘객들에 대한 소식이 항상 메인을 차지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봄 꽃 축제가 사치(奢侈)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다음 주면 1년이 되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렇고, 또 달세 독촉에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집 없는 사람들이 그렇고, 삼(3)포를 넘어 오(5)포 세대가 된 청년들은 더더욱 그렇다. 오(5)포 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에 `인간관계와 내 집`까지 포기한 청춘들을 말한다. 저주 받은 세대라고까지 자학하는 이 나라 청년들에게 봄은 정말 잔인한 계절이다.
잔인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 위의 사람들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그렇고, 그 학부모들은 더 그렇다. 그 중에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잔인한 봄은 언제 끝날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행복한 봄은 정말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인지, 답답하고 답답할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은 더 혹독한 겨울로 가고 있다”는 제목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봄꽃은 더 화려하다는 말이 있듯 지금의 겨울을 이겨내고 찬란히 꽃 피울 진정한 봄을 꿈꿔본다.
그런데 왜 이 꿈이 정말 꿈으로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까. 대한민국 헌법(제 10조)은 다음과 같이 국민의 행복에 대해 국가의 보장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대한민국 정부는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물음에 긍정적으로 답할 사람은 이 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라는 것이 있다. GHN 지수는 1970년대 부탄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2007년 4월 OECD는 국민총행복을 목적에 따라 평균행복, 행복수명, 행복불평등, 불평등조정행복의 4개의 세부 행복지수로 구분하고 각국의 GNH 정도를 측정하였다.
과연 대한민국 행복지수는? 이에 대한 답을 짐작할 수 있는 주요 지표 중 하나가 학생 행복지수다. 그럼 대한민국 학생 행복지수는 어떨까?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학생 행복지수 OECD 국가 중 꼴찌!” 마음 아프게도 꼴찌는 학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대한민국 행복지수도 꼴찌였다. 꼴찌라는 말이 대한민국의 꼬리표가 되지 않을 지 걱정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3일 `성인 행복지수`라는 것을 발표했다. 역시 결과는 참담했다. 세계 143개국 중 대한민국의 순위는 118위! 118위는 거의 꼴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에 있어서는 학생도 꼴찌, 성인도 꼴찌, 나라도 꼴찌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결과는 OECD 국가 중 전체 자살률 1위로 나타났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직역하면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이다. 중국의 4대 미인인 한나라 왕소군에 대한 설화인 이 고사성어가 수 천 년을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정말 묻고 싶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