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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장 두번 물 먹인 총리실

등록일 2015-04-08 02:01 게재일 2015-04-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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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득 편집부국장

지난달 31일 역사적인 포항 KTX 개통식장에서 이강덕 포항시장이 축사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개통식 현장에서 다른 내빈들의 축사를 들으면서 내심 초조하게 기다렸으나 끝내 그의 호칭은 불러지지 않았다.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잔칫날 손님들을 잔뜩 불러놓고 주인공이 말 한마디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축사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도 그는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으며 남은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포항시의 수장이 잔칫날에 축사를 하지 못한 굴욕적인 사례가 또 하나 있다. 지난 2011년 6월 30일 포스코 파이넥스 3공장 착공식장에서다. 당시 박승호 포항시장도 단상에 한번 올라가지 못하고 내빈들과 함께 발파 버튼만 누르는 `들러리` 역할만 하고 돌아왔다. 그날 행사 주관도 국무총리실이 총괄하다보니 김관용 경북지사의 환영사에 이은 김황식 국무총리의 치사로 끝났다. 광역단체장(도지사)만 축사자에 포함됐고, 자치단체장(시장)은 아예 의전 서열에서조차 제외된 것이다. 자존심 강한 박 시장이 그냥 있을리 만무했다. 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착공식이 끝난 뒤 곧바로 기자들과 만나 “지역 행사인 만큼 자신이 축사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냐”라며 “지방자치단체장을 홀대하는 국무총리실은 지방자치의 근본을 모른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박 전 시장의 즉각적이고 과격한 반응과는 달리 이강덕 시장이 이날 보여준 행동들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개통식에 이어 대구까지 갔다 오는 시승 행사에는 비록 참석하지 않았지만 방송국의 인터뷰까지 응하는 등 겉으로는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을 지켜 본 공무원과 일부 시민들은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참, 속도 좋다”라는 등 안타까움을 대신 표현했다. 또 일부에서는 이 지경까지 오도록 내버려 둔 포항시 해당부서의 의전섭외 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 “모든 의전을 국무총리실이 주관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손 쓸 수조차 없었다”고 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성사시키려는 자세와 의지가 부족한게 아닐까.

전·현직 두 시장의 행동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국무총리실에 직격탄을 날리며 격분한 박 전 시장, 속으로 분(憤)을 삭이며 겉으로 애써 태연한 척 한 이 시장. 전·현직 두 시장의 상반된 행동에 대해 시민들은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까.

어떤 모습이 시민들에게 이상적으로 비쳐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총리실이 지방자치단체인 포항시를 얕보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갑(甲)의 위치에 있는 총리실이 을(乙)인 포항시를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다. 개통식 전날에도 포항시 관계자들이 총리실이나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에 시장이 축사를 할 수 있도록 애원하다시피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단번에 묵살 당했다는 것. 53만 포항시의 수장이 잔칫날 시민들을 초청해 놓고 축사 한마디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겸손한 시장이라고 하지만 개통식날 포항시의 수장이 받은 예우치고는 너무나 초라하고 궁색한 것이다.

총리실의 입김이 그리 대단하고 막강한가. 중앙정부가 말로만 지방자치를 외칠뿐 아직도 자치단체를 평가절하하거나 하찮은 하부조직으로만 보고 있다. 국민을 위한 진정한 낮은 자세가 아니라 국민 위에서 군림하려는 것이다.

포항의 전·현직 두 시장이 총리실로부터 두 번씩이나 홀대(?) 받았다. 그것도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말이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굴욕적인 모습을 더 지켜봐야 할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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