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애들은 사는 형편이 비슷하지 않았다. 비교 대상이 생기자 가난은 이빨을 드러냈다. 배고픔을 느끼는 게 가난이 아니었다. 다들 스마트폰을 쓰는데 자신만 쓰지 못하는 것, 그게 가난이었다.”
열다섯 살 란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간다. 아빠는 집안에서 TV만 본다. 굽은 허리로 갈빗집에서 불판을 닦아 생활비를 마련하는 할머니. 그리고 그들이 사는 임대아파트.
한때, 세계가 평등한 줄 알았다. 누구나 동사무소에서 주는 쌀로 밥을 해 먹고, 누구나 좁은 집에 사는 줄 알았다. 패딩도 다 똑같은 줄 알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자신과 다르게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란은 하릴없이 작아만 졌다.
어느 날 첫 월경을 시작하고, 란은 임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애만 낳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어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다.
소설은 란과 200만원 짜리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산부인과 의사의 딸 예솔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뒷동네 서민들의 힘겨운 삶도 녹인다. 갑작스럽게 정리해고를 당한 후 TV만 보는 아빠의 상처와, 홀로 억척스럽게 딸을 키우는 옆집 아줌마의 삶의 무게와, 불법체류 신분으로 숨어다니며 엄마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조선족 아이 민성의 불안을 작가는 담담히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