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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힘

등록일 2015-03-26 02:01 게재일 2015-03-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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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정민 선생이 쓴 `오직 독서뿐`(김영사, 2013)을 읽어 보면 옛 사람들의 공부 방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허균, 이익, 양응수, 안정복,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홍석주, 홍길주 등 16~19세기까지 이름 난 조선 선비들의 책읽기에 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정민 선생은 무한질주하는 지금의 시대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방법을 책읽기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책읽기가 생각의 힘을 기른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역사적으로 볼 때 사유가 없는 시대는 비극만이 범람할 뿐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무사유가 악의 근원임을 밝히고 있다. 악은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인간의 무사유 즉, 개념 없음에서 온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이미 파스칼이 말하지 않았던가. 사유는 인간 고유의 속성이기 때문에 생각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을 넓히는 데는 직접경험만큼 좋은 것이 없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책은 자신의 생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허균(1569~1618) 선생은 장횡거의 `책은 마음을 지켜준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늘 있게 되고, 책을 읽지 않으면 의리를 보더라도 보이지 않게 된다`는 글을 인용한다. 책은 마음의 흐트러짐을 막아주는 좋은 도구로 작용하고, 의로운 이치를 바로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이익(1681-1763) 선생은 `찾는 것이 있어 책을 읽게 되면 읽더라도 얻을 것이 없다`는 글을 남겼다. 정민 선생은 이를 두고,`학생들은 죽기 살기로 암기하고 공부해서 안 틀리고 다 맞지만, 막상 시험만 끝나면 그 공부한 내용이 내 삶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딴 일이 되고 마는` 일에 비유한다. 시험에 유익하면서도 삶이 유익한 독서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양응수(1700-1767) 선생은 정자의 `책을 읽는 것은 장차 이치를 궁구하고 실용을 이루려는 것이다. 이제 혹 문장 구절의 말단에만 마음을 쏟는 것은 소용이 없다`라는 글을 인용한다. 이는 당대의 선비들이 책이 주는 큰 메시지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지엽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석을 두고 싸움을 일삼는 데 대해 깨우침을 주려고 한 말일 것 같다.

안정복(1712-1791) 선생은 `책이란 옛 성현들의 정신과 심술(心術)의 궤적이다. 옛 성현들이 오래 살면서 가르침을 베풀 수 없었으므로, 반드시 책을 저술하여 뒷세상에 남겨, 후인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취를 찾고, 자취를 통해 이치를 미루어 알게 하려 한 것이다`라고 했다. 책이 사람이라면 책읽기는 사람읽기와도 같다. 홍대용(1731-1783) 선생은 `독서는 진실로 외우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외우는 것을 버린다면 더더욱 기댈 바가 없게 된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초보 독서가들에게 외우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지원(1737-1805) 선생은 `군자의 아름다운 말도 간혹 뉘우침이 있음을 면치 못한다. 착한 행실도 때로 허물이 있을 수가 있다. 독서에 이르러서는 1년 내내 해도 뉘우칠 일이 없고, 100 사람이 말미암아도 허물이 없다. 명분과 법이 비록 훌륭해도 오래되면 폐단이 생긴다. 많을수록 더욱 유익하고, 오래되어도 폐단이 없는 것은 독서 뿐`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좋은 것이 참으로 많지만, 반복해서 하면 싫증이 난다. 하지만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안목이 넓어지니, 자신의 삶에 유익한 일만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조선의 선비들은 책 읽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고 듣기가 우세한 세상인 것 같지만, 읽기는 누가 뭐래도 보고 듣는 문화 생산의 동력이 되고 있다. 책읽기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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