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매체나 주변 대화를 살펴보면 유아들의 학업성취도나 지능발달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학부모들은`내 아이에게 학교교육을 어떻게 준비시킬까?`에 관심이 많다. 이에 부응하여 유아들의 학업 성취도나 학업 준비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교구가 상업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 중 한 교재·교구는 `당신의 아이를 똑똑하게 만들 것입니다`라는 홍보 문구를 쓰고 있는데 학부모가 그 홍보물 앞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다.
상업적으로 시판되고 있는 프뢰벨 교구나 몬테소리 교구도 유아들이 자신의 감각을 활용하는 동안 지적 자극을 받음으로써 궁극적으로 학교교육을 받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교구는 영어와 같은 제 2 외국어를 가르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프뢰벨이나 몬테소리가 원래 의도한 교육철학을 실천하는 대신 학부모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변형된 것이다.
그렇다면 프뢰벨이나 몬테소리처럼 역사 속 유아교육자들은 어떤 교육법에 관심을 가졌을까? 교구와 관련된 교육철학을 제대로 이해해야 그 교구를 활용하여 유아발달을 제대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속 유아교육자들이 공통적으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유아교육자들의 생각이 교구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먼저, 역사 속 유아교육자들은 공통적으로 유아들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프뢰벨(1782~1852)은 누구나 태어날 때 내면에 신성(神性)을 갖고 있다고 보았고 이 신성을 개발하기 위해 교구를 고안했다. 프뢰벨의 교구는 신이 창조한 우주를 기하학적인 형태로 단순화시켜 놓은 것으로, 유아가 교구를 만지고 놀면서 스스로 내면의 신성을 깨닫고 신처럼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몬테소리(1870~1952)는 유아가 자신이 선택한 일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므로 어른의 힘과 간섭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유아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교구를 고안했다.
결국 이들의 교구는 오늘날 강조되는 유아의 지능 개발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유아들의 잠재력에 대한 신뢰로부터 출발하여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놀이할 수 있도록 도울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하지만 학업 준비도가 강조되는 요즘에는 교구들이 원래의 제작 목적과는 다르게 학업 준비도를 향상시킬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외국어 교육에도 활용되고 있다.
한편, 역사 속 유아교육자들은 공통적으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했으며 유아교육에도 이를 반영했다. 프뢰벨은 유아들이 매트 짜기나 상자 만들기와 같은 일에 참여하여 자조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유아들이 할 수 있는 작업의 종류를 제시했다. 몬테소리는 유아들이 일상생활 중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의자 옮기기, 냅킨 접기, 물 따르기 등을 훈련하여 자조능력을 기르도록 했다.
미국 진보주의 교육학자 듀이(1859~1952)도 요리나 재봉, 목공과 같이 당시 사회적으로 가치 있던 활동에 유아를 참여시켜 유아도 사회생활의 일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필자가 교육현장에서 만난 아이들 중 유치원에서 하는 어떤 활동이든 “난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 평상시에 간섭이 심하며 엄격한 부모님 아래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이 무엇을 할 지를 선택해 본 적이 없고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성취감을 맛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 아이는 무기력해져 있었다.
똑똑하고 성적점수가 높은 것이 최고의 가치인 요즘, 아이들이 이에 따라 훈련받고 있으나 실상은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길들여지고 있으며 글자쓰기나 셈하기 속도는 빨라질지언정 자신의 일상 삶에서는 점점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때문에 유아의 성장 가능성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 꽃피울 수 있다는 선인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유아들이 교구를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며 아울러 아이들 수준에 맞는 작업을 제공하여 자유와 일의 기쁨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