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이야기 할 때`희망찬 봄이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희망을 품고 뭔가를 시작하는 달이 3월이기 때문에, 그 희망들이 모여서 희망이 가득 찬 봄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쓰는 것 같다. 지금 대학의 캠퍼스에는 희망에 가득 찬 새내기 대학생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넓은 교정에 퍼져 있는 강의실을 찾아 헤매는 학생도 있고, 강의와 강의 사이에 빈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서성이는 학생도 있다. 좌충우돌하면서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각 대학들이 강의를 시작한 지 한 주일이 지났다. 고등학교 때와는 너무도 다른 생활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부딪히는 큰 문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개강 전 입학식과 함께 새내기 캠프를 열어 대학생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했던 대학도 있겠지만, 대학생활이라는 것이 며칠간의 설명으로 그 실상을 다 익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한 주일 동안 겪어 보아서 잘 알겠지만,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내 삶의 주인되기`임을 짐작했을 것이다.
이번 학기에 수강해야 할 교과목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동아리에 참여할 것인지, 하루 중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주변의 도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선택과 결정의 주체는 자신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철학자 안병욱 선생님이 대학생을 두고 도자기를 빚는 도예공에 비유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물레 위에 올라앉은 진흙덩이로 어떤 도자기를 빚어낼지는 순전히 그대들의 몫이니, 멋진 도자기를 빚어내 보자.
지난 주, 강의를 들어보아서 짐작했겠지만 대학에서의 공부는 입시위주의 암기식 공부가 결코 아니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교육학자 김신일 선생님의 말씀처럼 `의심과 모험의 학습학`이고, 사회학자 한완상 선생님이 말씀하신 `창조적 상상력을 기르는` 공부여야 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지구의 운동을 의심해 보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처럼 의식의 한편에 있는 무의식을 실험해 보고, 프리드리히 니체처럼 당대의 합리주의를 부정해 보는 것이 이른바 그런 류의 공부일 것이다. 의심과 모험에서 창조적 상상력으로 나아가는 공부는 결코 쉽지가 않다.
창조적 상상력은 21세기의 인재들에게 간절히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한데, 이는 지금까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다면 새로운 해석이라도 해 봄직 하지 않은가. 이런 성과를 내기위해서는 전공과 교양 영역의 교과 전반을 두루 거치면서 성실하고 꼼꼼한 자세로 기존의 지식들을 점검하는 일이 우선해야 가능할 것이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고등학교 때의 공부와는 달리 그 범위가 거의 무한대로 넓고 깊기 때문에, 학습의 주체가 지식의 바다를 헤엄치는 데 비유되기도 한다.
공부의 양이 많아지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도 당연하게 늘어나야 할 것이다. 이제 대학생이 된 여러분들은 밤을 새워 과제를 준비하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고, 과제 준비를 위해서 도서관 출입도 잦아질 것이다. 새로 만나게 된 친구들과 생각을 나눌 시간도 가지게 될 것이고, 선배님이나 교수님께 공부나 인생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을 것이다. 먼 후일, 그대들은 킴벌리 커버거의 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화자처럼 회한에 젖은 시구를 읊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청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