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했던 그는 지난달 말 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그는 지난 2009년 치러진 대선 때 2차 결선 투표에서 52.6%로 당선됐다. 최근 퇴임을 앞두고 여론조사를 한 결과, 그의 지지율은 65%에 달했다. 당선 때보다 퇴임 때의 지지율이 더 높은 것이다.
그는 취임 직후 대통령궁을 노숙자 쉼터로 내주고 자신이 살던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 농장에서 아내와 함께 지금도 살고 있다. 여가시간에 직접 트랙터를 몰며 국화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팔기도 했다. 월급은 1만4천달러로 이 가운데 87%는 자신이 속한 프렌테 암플리오 정당과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월 100만원 남짓 돈으로 생활한 것이다.
취임당시 신고한 재산목록은 1천800달러짜리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 1대뿐었다. 아랍의 부호가 그의 비틀 승용차를 100만달러에 사주겠다고 제의했었지만 거절했다.
최근 우루과이 서점가에서는 무히카의 전기 `조용한 혁명`(La Revolucion Tranquila)이 베스트셀러로 떠올라 화제가 됐다. 이 책은 무히카가 군사독재정권 시절 좌파 무장조직의 게릴라로 활동하던 시절과 14년에 걸친 교도소 생활 등을 담았다. 조만간 10여개국에서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그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지금의 자택에서 부인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꾼으로서의 생활을 새로 시작하는 셈이다. 그의 퇴임소식을 접한 SNS상에는 “이런 멋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왔으면 한다”는 소망의 글이 넘쳐나고 있다.
3월은 시작의 달이다. 입춘과 우수가 지나고 경칩을 앞두고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봄은 희망이다. 입학시즌에 각급학교의 시끌벅적한 활기가 먼저 봄을 알린다.
입학식 때만 되면 오래 전 이어령 교수의 서울대 입학식 축사내용이 기억난다. 그는 “대학생이 된 여러분을 축하하는 이 자리에서 나는 `떴다 떴다 비행기`의 평범한 그 동요를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싶다”고 운을 뗐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이 교수는 “우리 역사책에는 하늘을 날려고 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옛사람의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서양에는 비행 실험을 하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그런 미치광이조차 없는 땅에 태어난 우리에게도 하늘을 나는 꿈은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향해 `날아라`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면 이 비행기는 뜨기만 하고 아직 날지는 못하고 있다. 날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 비행기`를 `우리 학교` `우리나라`로 바꿔볼 것을 권했다.
입춘이 지나면서 우리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입춘첩을 대문에 붙였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막연히 행운을 빌지 않았다. 큼지막하게 글자만 써 붙인 염치없는 분들이 아니었다. 옛날 입춘에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일년 내내 횡액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입춘 전날 밤 각자 선행의 공덕을 쌓았다. 야밤 개울에서 징검다리를 놓고,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솥을 두고 오기도 했다. 그래서 입춘은 `入春`이 아니라 `立春`인가 보다. 지극정성으로 `봄을 세운다`는 뜻이다.
봄은 해가 바뀌었다고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새봄을 맞기 위해서는 지극정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박근혜정부가 지난달 25일로 출범 2년을 맞았다. 청와대는 물론, 여당과 야당도 새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새해들어 첫 해외순방인 중동 4개국 방문에 나선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시장만 생각해 갖고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이라 발전을 못한다”고 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지역 정치권도 `정치의 개학`인양 움직임이 분주하다. 하지만 구호만 있고 체감은 없다는 국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정책 결정과 집행이 훈훈한 봄바람처럼 와 닿아야 한다.
환경운동의 일대 경각심을 일깨운 레이첼 카슨이 1962년 출판한 `침묵의 봄`은 독특하다. 이 책의 원제목은 `Silent Spring(조용한 봄)`이다. 봄이 왔는데도 새가 울지 않는, 그래서 `조용한`가상 상황에 대한 서정적 묘사로 책을 시작한다. 우리에게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같은 `침묵의 봄`이 아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