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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길 걷기

등록일 2015-02-25 02:01 게재일 2015-02-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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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재성 경주본부장

경주에서 생활을 한 지 8개월째다. 경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차량을 없앴다. 25년 동안의 도시 기자 생활에서 심신이 지친 나머지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해 피곤함의 악순환이었다. 그러던 중 경주로 옮겨 오면서 결심한 게 바로 `걷기`이다. `걷기예찬` 등 관련서적이 쏟아지는 등 걷기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는 추세에 맞춰 나 자신과 `걷기`에 새끼손가락을 건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걸어서 다니다 보니 이제 먼 거리가 아니면 걷는 습관이 생겼다. 약속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일찌감치 나서다 보니 스스로 겸손해지는 맘도 덤으로 얻었다.

이렇듯 이제는 하루에 꼭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만 `밥값`을 한 것처럼 맘이 편하다. 이래서 철학자 칸트가 매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걷기를 해서 `칸트시계(칸트가 걸으면 5시로 생각함)`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경주는 걷기에 참 좋은 도시이다. 천년고도 특성상 건물의 높이와 용적률이 높지 않은 `곡선의 도시`인데다 교통유발 요인을 가진 다중복합시설도 없어 관광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량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도심의 경우 출발점에서 20~30분 걷다 보면 역사문화유적지가 나타나 걷는 길이 밋밋하지가 않다.

걷기는 혈액순환 촉진, 체지방 감소, 골밀도 유지, 스트레스 해소, 면역력 증가, 성인병 예방 등 운동 효과를 뛰어넘어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방편으로서, 삶의 빠른 속도에서 잠시 쉬기, 함께 걷는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살펴 볼 수 있는 등의 혜택도 안겨 준다.

지난달 31일 경주시청 출입 언론사 기자와 최양식 경주시장, 김남일 부시장을 비롯한 시청 간부들을 포함해 30여 명이 이재호 기행작가의 안내와 설명에 따라 경주 낭산 신문왕릉→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황복사지 3층석탑→연화문 당간지주→진평왕릉으로 이어지는 가칭 `왕릉길`을 걸었다. 참가자들이 등산복과 등산화 차림으로 수학여행 온 학생처럼 작가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물으면서 잠시나마 서로의 `마인드`를 비비며 걷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날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은 최 시장인 듯 싶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중앙부처 요직을 두루 거쳐 행정자치부 제1차관을 지낸 뒤 2010년 7월부터 시장직을 맡고 있는 최 시장은 `세계의 새천년 비젼` `한국의 들꽃과 전설` `서양 고지도를 통해 본 한국` 등을 출간했을 정도로 역사문화에 조예가 깊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최 시장이 기행작가와 다른 측면에서 왕릉과 유적지 등에 대해 설명까지 곁들이며 선두에서 걸어 문화관광도시 시장으로 충분한 자격과 가치(?)가 있음을 간적접으로 홍보하는데 주효했던 것이다. 추운 날씨에 방송장비를 든 직원에게 장갑을 벗어주는 모습에서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경북도지사를 꿈꾸고 있는 최 시장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한나절이었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은 추억이 등하굣길에 서려있듯 자신을 내보이고 상대를 읽고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은 바로 길(걷기)이다. 그래서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걷기는 인간이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이날 왕릉길 걷기에 동참한 이들은 최 시장을 기억할 것으로 짐작하면서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처럼 경주에도 `왕릉길`이나 `황금길`등을 만들고 덤으로 주요 유적지를 연결하는 `걷기 길`을 개설, 전천후 관광·휴양·탐방객을 맞길 제안해 본다. 또 석굴암-불국사 간 도로를 `러브로드`로 명명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구불구불해 남녀가 나란히 차에 앉아서 내려오면 서로 비비대면서 화해하고, 사랑이 두터워지는 그런 효과를 나타내는 곳으로`스토리텔링`을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다 특정 코스에서 경주 실정을 잘 아는 시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들이 순번을 정해 안내와 해설을 맡는다면 전국적인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길은 문화를 만들고, 도시를 가치있게 만든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를 탄생시킨 아테네의길. 프랑스 예술문화의 꽃을 피운 카페골목, 대구 중구의 근대골목 등을 교훈 삼아 볼 필요가 있다.

켜켜이 역사가 쌓인 경주를 걷다가 보면 갑자기 영감((靈感)이 떠오르고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경주시가 추구하는 `힐링도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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