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전해 들은 병영문화는 정말 진일보돼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선임들의 구타나 얼차려 등은 찾아볼 수가 없고 동기들이 한 내무반에서 생활하며 저녁식사 이후 선임들의 이유없는 내무반 방문도 금지됐단다. 겨울철 제설작업도 폭설로 차량을 이용한 작업이 어려울 때만 전 장병이 모두 나가 일손을 돕는다고 했다. 심지어 병영에 국방부 직통의 `해피콜` 전화가 비치돼 금지사항을 강요할 경우에는 연락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병영문화 선진화가 곳곳에서 이뤄진 셈이다.
그래도 부대 내 몇 가지는 개선될 사항이 남아 있어 아들 녀석이 상관 면담시 동기들이 모두 참석한 상태에서 서면으로 건의한 결과, 부대장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개선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부대장의 군인다운 결단이 돋보였지만, 일순 걱정이 앞섰다. 고참들의 왕따 아닌 왕따가 이어질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건의한 이유를 묻자 아들 녀석은 “고생은 우리 동기에서 끝나고 후임들은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2~3년 뒤 동생도 입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집단 왕따를 각오하고 건의를 했다”며 씩 웃었다. 건의하기 전 신병훈련소 동기들에게 일일이 다른 부대도 같은 현상인지를 꼼꼼히 묻고 조사까지 했단다. 그 결과 일부 선임은 자대배치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이등병의 `고자질`에 고까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지만 몇몇 선임들은 그동안 본인들도 개선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격려를 했단다.
휴가 나올 때 가지고 나온 배낭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선임이 손에 들려 준 것이라고 자랑했다.
누군지도 모를 후임들까지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이 흐뭇하고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아들 바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너무나 잘 자란 아들의 모습이 기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해 6·4지방선거가 끝난 5일 후인 6월9일 김범일 전 대구시장이 체결한 이상한 협약에 생각이 미쳤다. 김 전 시장은 그때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가 특혜시비를 우려해 반대 뜻을 표명하는 데도 불구하고 대경ICT협동조합과 소프트웨어융합산업클러스터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상호협력한다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체결식에 대경경자청측이 참석을 거부하자 대구시는 수성의료지구 기반조성만을 담당해 산업용지 분양과는 상관없는 대구도시공사를 깜짝 출연시키는 무리수까지 동원했다. 이를 근거로 ICT협동조합에 속한 여당 국회의원의 남편은 대구시와 대경경자청에 수성의료지구의 산업용지를 분양가 이하로 달라는 외압까지 행사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김 전 시장은 당시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의 지지 속에 당선된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이런 협약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더욱 수상한 협약이란 비난을 자초했다.
이 협약으로 인해 후임인 권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경경자청 역시 곤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분양을 요구하는 이가 여당 국회의원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당시 김범일 대구시장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물론 협약자체는 대구시의 명품 소프트웨어 단지조성을 통해 지역 소프트웨어산업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외견상 특별한 하자는 없다. 그러나 담당 기관이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업무협약을 강행한 김 전 시장의 행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더욱이 김 전 시장은 이런 중차대한 상황을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알리지도 않고, 대구시의회가 지난해 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사업이 중단된 `이우환미술관`은 반드시 챙겨달라고 신신당부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정치권에 눈치 보지 않고 욕을 먹더라도 오로지 시민만을 바라보는 `시민 바보`가 되기는 어려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