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순 희
단풍 든 나무들 왕관이 되는 순간
나는 고독한 여왕처럼
주루룩 눈물을 쏟아 내고
금빛으로 환하던
왕릉 가는 길 잠시 어두웠다
어둠 속으로 몸 숨기려는
한낮에 있었던 부끄러운 것들
저 완벽한 항변에
한사코 끌려나와
투명하게 밝혀지는 풍경들
무엇을 숨길 수 있으리
이견대에 올라
문무대왕을 만났다는 것보다는
대왕암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횟감 같은 갈매기 몇 마리 보았다고
고백하는 것이
차라리 정직한 것을
오늘은 산보다 달이 더 컸다
생을 관조하는 편안한 시인의 눈을 본다. 연두빛 새순을 낸 나무는 신록의 성장을 입었다가 다시 낙엽을 떨구는 텅 빈 자신으로 돌아간다. 시인은 늦가을의 황량한 대지와 숲을 밝히는달, 변함없이 우리의 한 생을 따라가면서 비춰주며 은총의 빛을 내려주는 달을 바라보고 가만히 품고 있다 평화로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