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병 근
출렁이던 고통이 할복(割腹)했다
코를 풀면서 치를 떨면서
쏟아진 내장을 수습한 그가
어둠 속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쥐도 새도 모르게 밤이 가고
한낮의 태양이 흑점을 키울 때
들끓는 파리떼여
사방으로 튄 얼룩이여
먼지가 될 때까지
밟히고 지워지면서
머리 처박은 주검 하나
오래오래 눈 안에 있다
모든 고통이나 주검은 결국 먼지가 될 때까지 소멸의 과정을 밟게 된다. 먼지가 될 때까지 서서히 자신을 지우는 죽음의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인은 죽음을 잊혀짐과 지워짐이라 인식하고 모든 죽음의 뒤에 남겨진 망각, 서서히 잊혀져 감은 또한 얼마나 허무하고 허망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