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용 숙
바다는 지금 보름달을 순산 중이다
물 위로 길게 뻗은 금빛 항로가 눈부시다
낮 동안의 부끄러운 것들은
숨어들었다
물소리 베고 누워 눈만 껌뻑이는,
시간의 끈을 놓아버린 폐선 한 척이
결빙된 자신의 꿈보다
흘려보내지 못한 말들을
아파하며 몸 뒤척이는 곳에서
나는 바다로 인해
끝없는 패배를 배운다
달빛이 바다를 삼키는
생명의 대서사시 앞에서
물결 위로 금빛 길을 열어주는 보름달. 분탕스러웠던 한낮의 시간들 그 부끄러웠던 것들이 그 길 위에 스미고 폐선 한 척이 가슴 가득 품은 아픈 시간의 흔적들로 뒤척이는 송라바다에서 시인은 이만큼 세상을 뜨겁게 건넌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다. 그 성찰을 통해 겸허하게, 끝없이 패배를 배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가만히 맑고 밝은 밤의 서정이 곱고 깊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