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 세 번째 장편영화 `다우더`로 다시 감독으로 나서
`얼굴도 예쁜데 재주도 좋네`라는 칭찬도 받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칭찬은 한 번의 웃음으로 끝나지만, 욕설은 마음속을 긁어 깊은 생채기를 냈다.
그래도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썼다. 단편 `유쾌한 도우미`(2008)에서 시작한 그의 필모그래피는 `당신`(2010), `기억의 조각들`(2012) 같은 단편영화와 `요술`(2010), `복숭아나무`(2012) 같은 장편영화로 이어졌다.
구혜선이 세 번째 장편영화 `다우더`를 들고 다시 감독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주인공도 맡았다. 자신의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한 건 처음이다. 말랑말랑한 이야기 대신 모녀 관계와 죽음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택했다.
`칠곡계모사건` 같은 강력 사건을 듣고 울분이 치밀어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여기에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한 에피소드와 초·중·고를 거치면서 들었던 가정 폭력 이야기를 섞었다.
“근래 들어 그런 강력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났어요. 아이들이 폭력을 경험하는 주된 경로가 놀랍게도 가정이에요. `부모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엄마(심혜진)에게 매를 맞고 자란 산(현승민·구혜선)과 그를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뤘다. 엄마는 남들 앞에서 교양 있고 침착하지만, 아이와 둘만 있으면 학대를 서슴지 않는 `위선적인 엄마`로 돌변한다.
“엄마가 오해하실까 봐 안 보여 드렸어요. 또래들을 보면 공포심에 학창시절을 보낸 경우가 많았죠. 가정 폭력이 정말 심각했어요. 말 안 들으면 맞는 게 정당하다고 여겼어요. 계모보다 친부모가 더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혜진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심혜진은 발작에 걸린 듯 화를 내다가도 차분하고 조용한, 위선적인 엄마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돈도 못 드렸는데 부탁을 하자 바로 답이 왔어요. `심혜진 선배가 아니면 이 영화 접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흔쾌히 오케이를 받았죠.” 구혜선은 감독이지만 동시에 연기자이기도 하다. 선배에게 연기 지시하기가 어렵지는 않았을까.
“시나리오를 크게 벗어나는 디렉션을 하지 않았어요. 표현을 잘하셨어요. 제가 말하기 어려울까 봐 일부러 찾아와 `문제 있으면 말해`, `조금 더 해볼까` 하고 말씀해 주셨어요. 워낙 월등한 능력을 지닌 배우였기에 영화를 끌고 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꼭 필요한 경우라면 `한 번 더 갈까요`라고 말하기도 했죠.”(웃음)영화는 프린트와 마케팅비용을 포함해 1억 2천만 원이 들었다. 적은 예산 탓에 8회차 만에 뚝딱 찍었고, 배우도 많지 않았다. 미술, 조명에 유난히 신경 썼던 전작들에 비하면 톤도 많이 다운됐다. 소재에서 오는 묵직함뿐 아니라 적은 예산이 영화의 전체적인 색깔을 정했다.
“후반작업 비용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하루 밥값만 해도 만만치 않았어요.
예산에 꼭 맞춰야 했고, 군더더기도 없어야 했어요. 그렇게 절약하면서 찍었지만, 스태프들도 거의 돈을 받지 못하고 촬영했죠.” 구혜선은 다방면의 활동으로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때론 욕도 따라온다.
“욕설이 점점 업그레이드 됐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인신공격성 욕을 하다가 작품을 낼수록 `질이 높은 욕`을 하시더라고요. `그래 욕이라도 퀄러티가 높은 걸 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살게 됐죠. 요즘은 `한 가지 일이나 열심히 해라`, `감독 아무나 하나`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욕을 기대해요. 첫 영화 때는 그런 말들이 상처였는데, 이제는 `자학개그`를 하는 자신을 발견해요. 이제 욕을 듣더라도 어느 정도 기준이 생겼어요. 나에게 약이 되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악의로 가득 찬 독인가.” 연기에 집중하는 건 어떠냐고 묻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만 하려면 전화만 되는 휴대전화만 쓰면 되잖아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다 스마트폰을 써요. 대학가서 전공 선택할 걸 왜 고교생들에게 12과목이나 가르치나요? 카페를 한다고 해도 실내장식, 전등, 음악 등을 골고루 알아야 해요. 영화도 마찬가지죠. 조명, 미술, 기술 등 많이 알아야 하죠. 제가 여러 가지를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뿌리는 하나예요. 예술이죠. 시간이 오래 걸려야 완성될 수 있는 거예요. 한 가지만 하라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