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규 승
그림자를 보고 있다
길게 누운 건물들
쓰러진 채 달리는 버스
사내를 밟고 지나간다
몸 가운데 타이어 자국이 선명한 그림자
벌떡 일어나 사내에게서 발을 뺀다
그림자를 잃은 사내는 보도블록에 붙어버린다
멀어져가는 그림자를 쳐다보는 사내
기울어지는 해를 따라 점점 길어진다
몸의 그늘에 불과한 그림자에 시인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버스가 시인의 그림자를 밟고 지나가고 차에 치인 그림자 중간에 타이어 자국이 나 있다고 믿는 시인의 인식에서 현대인들의 공허의식이랄까 여러 자극에도 무감각한 내면의 문제들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를 통과하는 것은 우리의 그림자를 밟고 지나는 버스만 아니다. 수없이 우리를 지나고 통과하는 보이지 않는 방사선이나 전파, 우리가 직접 느낄 수 없는 수많은 물질문명의 무선들이 우리를 통과하고 지나가버리지만 우리는 무감각하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번 쯤 생각해볼 일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