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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의 변법

등록일 2014-10-29 02:01 게재일 2014-10-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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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현 변호사

경북매일신문의 고충처리인 홍승현 변호사입니다.

상앙은 중국 전국시대의 진나라의 정치가로서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해 진나라의 국력을 강하게 해 진시황 때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도록 기초를 만든 사람입니다. 변법(變法)은 `법을 바꾼다`는 말이지만 중국 역사적으로는 개혁을 상징하는 용어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상앙은 원래 당시 강대국인 위나라의 사람이었으나 위나라에서 관직을 얻지 못하자 진나라로 건너가서 진나라 왕 효공에 의해 관직에 등용됐습니다. 당시 진나라는 중국대륙 서쪽 변방에 위치한 이류 약소국가에 불과했으나, 상앙은 진효공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내정개혁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아 두 차례에 걸쳐 20년 동안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방면에 대해 대대적인 변법을 추진해 진나라를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했습니다.

상앙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왕족, 귀족 등 기득권층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었으므로, 그러한 반발을 누르기 위해서는 진나라 왕의 신임뿐만 아니라 백성의 신임을 얻는 것이 필요했을 것인데 상앙이 백성의 신임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일화가 있었습니다. 상앙은 수도 남문에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무기둥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금 10냥을 상으로 준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을 한 사람에게 설마 금 10냥을 주겠나면서 상앙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상금을 올려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상앙은 상금을 다섯 배까지 올려서 금 50냥을 주겠다고 했고 그제서야 어떤 사람이 반신반의 하면서 나서서 나무기둥을 북문으로 옮기자 상앙은 약속대로 그 자리에서 금 50냥을 상금으로 줬습니다. 그 이후 상앙은 백성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고 그때부터 신법을 공포하고 본격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상앙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추호의 예외나 사정을 두지 않는 엄격하고 냉철한 법집행을 했습니다. 어느 날 진나라의 태자가 죄를 저질렀으나 태자는 다음 왕이 될 사람인 태자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상앙은 태자를 벌하는 대신 태자의 스승의 코를 베어버리는 벌을 줬고, 그 이후로는 위 아래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상앙의 신법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진나라의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누구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진나라를 개혁해 강대국으로 만든 상앙이었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상앙을 신임하던 진나라 왕 효공이 죽자 그 뒤를 이어 태자가 왕으로 등극하였고, 새로운 왕과 상앙의 반대파는 상앙을 반역자로 몰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를 눈치 챈 상앙은 도망쳤고, 도망길에 여관에 묶고자 했으나 당시 여관에서는 여행증명서가 없는 사람은 받아줄 수 없는 법이 있었으므로, 도망자 신분으로 여행증명서가 없는 상앙은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여관에서 쫓겨나게 됐고, 결국 체포돼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해 죽게 되고, 그의 가족과 친족도 모두 죽게 됩니다. 상앙은 죽었지만 그가 만들어 시행했던 법과 제도, 정책은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전국시대의 초강대국으로 성장시켰고, 약 100년 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초가 됐습니다. 상앙의 변법은 지금도 중국역사상 개혁의 대명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충처리인은 앞으로 독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권익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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